상단영역

본문영역

쌀 한 톨의 무게는 얼마나 될까?

완도 야생화: 벼/화본과

  • 박남수 기자 wandopia@daum.net
  • 입력 2015.11.12 03:18
  • 수정 2015.11.16 17:29
  • 글씨크기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0년 넘게 완도 이곳저곳을 다니며 들꽃을 사진에 담아 왔지만 정작 벼꽃은 없다. 그래서 추수가 이미 끝난 지난 9일 텅 빈 화흥포 들녘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돌아다녔다. 베어진 벼 포기 사이로 벼이삭이 새로 돋아 나오고 있었지만, 벼꽃은 보이지 않았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오후 느지막한 그 시간은 꽃을 볼 수 있는 때가 아니었던 것이다.

벼꽃은 오전 10시에서 오후 2시 사이에 핀다. 두 쪽의 벼 껍질이 반으로 갈라지며 6개의 수술이 나오고 그 사이에 솜 같은 암술 1개가 있다. 꽃잎도 없고 꽃받침도 없는 불완전꽃이다. 바람이 불면 수꽃 가루가 암술에 날려 수분된다. 벼꽃이 수분돼 맺힌 열매가 벼다. 또 그 벼가 여러 개 달린 줄기를 벼이삭이라 부른다. 줄기에서 이삭이 먼저 패고 나중에 꽃이 핀다.

벼의 성장 기간은 의외로 짧다. 모내기 후 100일 동안 농부들의 88(米)번의 정성과 땀으로 마침내 추수한다. 완도의 경우 5월 하순 경 모내기하고 10월 중순에 추수하니 100일은 넘는 셈이다. 이삭에서 벼를 탈곡해 쌀을 정미하는 정도에 따라 현미, 중미, 백미가 된다.

청동기 시대에 본격화된 벼농사는 우리 민족의 역사나 다름없다. 고깃국에 흰 쌀밥을 원 없이 먹어보는 게 우리의 오랜 소원이었다. 그래서 벼농사를 천하의 근본으로 삼았다. 일제가 우리의 쌀을 수탈해 갔던 역사적 사실을 수출이라 우겼던 암울한 때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자급을 넘어 쌀이 남는 시대요, 밥을 먹지 않는 세상이다. 쌀의 위기이자 역사의 위기이다.

가수 홍순관은 나락 한 알 속에 바람과 천둥과 비와 햇살과 외로운 별빛이 스며 있다고 노래한다. 그래서 쌀 한 톨의 무게가 생명의 무게, 평화의 무게이자 농부의 무게, 세월의 무게라고 한다. 우주의 무게라고 노래한다. 지난 11일 농업인의 날을 맞아 새삼 농부의 무게를 생각한다. 쌀 한 톨의 무게를 생각한다.

두어 시간을 헤맨 후 결국 벼꽃 찍는 것을 단념했다. 꽃을 찾아다닌 지난 10여년 세월이 부끄러워졌다. 내년 여름을 기다릴 이유가 하나 생겼다. /박남수 기자

저작권자 © 완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