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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끈한 카레 한 그릇

김주인(다문화가족지원센터 한국어교실 강사)

  • 김주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15.11.05 01:02
  • 수정 2015.11.09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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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성큼 다가왔다. 습한 여름도 나기가 쉽지 않지만, 매서운 강풍과 살을 에는 추위를 동반한 겨울은 더욱 쉽지 않다. 특히나 적도 근방의 나라에서 온 이들에게 겨울은 정말 무서운 존재다.

이번 월요일 저녁에도 어김없이 완도군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한국어 교실 수업이 진행되었다. 우리네 인식으로 11월은 아직 가을이지만, 그들에게는 이런 날씨면 이미 겨울이란다. 쌀쌀해진 날씨만큼 오는 이들의 옷차림도 두터워지면 좋으련만 가을 차림 그대로다. 수업 전 마트에 들렀다 온다고 밝게 웃으며 신나서 가는 모습이 정겹기만 한데, 한편으론, 여전히 이들에 대한 시선이 차갑기만 한 것은 아닌지 주변을 쓰윽 돌아보게 된다.

"요즘 들어 완도 살기 무서워졌어." 읍내를 다니다 보면 심심찮게 만나게 되는 외국인들을 보면서 하는 지인의 말이다. 날이 어둑해지면 농공단지 쪽은 조심하라는 말도 덧붙인다. 미국이나 유럽 등지의 백인들에 대한 태도와는 달리 동남아시아나 중동, 아프리카 등에서 온, 우리보다 피부색이 조금 짙다싶은 사람들에게는 확연하게 배타적이고 그들을 경시하는 게 우리네 오래된 모습이다. 그리고 서너 달 전 이 수업을 시작하기 전의 나 역시 그러했다.

외국인 노동자를 위한 한국어 교실 수업을 하면서 약 30명 가까이의 사람들을 만났다. 현재 고정 출석하면서 학구열을 불태우는 이들은 9명 정도다. 모국에서 IT 전공으로 대학을 나왔지만 돈을 벌려고 한국에 왔다는 친구, 한국여자와 결혼하고 싶다는 친구, 가족들은 스리랑카에 있지만, 내년에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일하고 싶다는 아저씨. 국적도 사연도 각양각색이지만 대부분이 전복양식장, 수산물 관련 공장에서 일을 하고 있다. 양식장의 경우, 새벽 5시에 일을 시작해 오후 늦게까지 조업이 이어진다고 한다. 그래도 피곤한 몸을 이끌고 한국어 수업을 위해 나와 말 그대로 눈을 반짝이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진심으로 그들의 삶을 응원하게 된다. 나아가 ‘이런 친구들이 앞으로 우리나라의 산업역군이 되겠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세 번째 수업을 할 때야 비로소 이름도 다 외우고 마음의 벽도 허물어져 가고 있음을 느꼈다. 이제는 수업을 마치고 나면 가벼운 허그로 인사를 나눈다. 농공단지에 대한 벽이 무너지는 데는 조금 더 시간이 걸렸다. 수업을 마치고 차량운행을 하면서 농공단지 구석구석에 살고 있는 이들이 바로 나의 학생들이고 수업 동료들이라는 사실이 가슴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대한민국 전복 생산의 80%를 감당하고 있는 곳이 완도다. 그렇다면, 저들이 해내는 일은 그중 얼마나 될까? 통계로 발표된 바는 없지만, 모든 과정이 완도 주민, 혹은 한국인의 손을 거쳐 나오는 출하량보다 외국인 노동자의 손을 조금이라도 거친 양이 더 많지 않을까 싶다. 아마 외국인 노동자들이 없으면 문을 닫아야 할 업체들도 있을 것이다. 조선족 중국인 십장이 나왔다는 게 옛말이다. 스리랑카 친구가 능숙한 치패 기술자가 되는 날도 머지않았다.

해변공원을 걷다보면, 홀로 앉아 전화하는 이들, 먹거리를 사들고 배로 오르는 이들을 곧잘 보게 된다. 외국인 노동자들은 우리 사회 곳곳에서 없어선 안 될 존재로 자리매김했다. 이들을 잠재적인 범죄자나 4, 5계급쯤의 하류인생으로 취급할 게 아니라, 우리 사회를 함께 지탱하는 또 하나의 버팀목으로 보는 마음의 여유가 우리에게 필요하다.

두 주 전, 어슴푸레 가로등이 켜질 무렵 자전거를 타고 농공단지를 지나봤다. 조만간 다시 자전거를 타고 가려 한다. 이번에는 한 학생의 집에 들어가 인사도 나누고, 기회가 되면 수업시간에 맛봤던 카레도 한 번 다시 얻어먹고 싶다. 동네 이웃, 아는 친구 집에 잠깐 들러 남은 밥 한 술 달라는 게 무에 그리 어려우랴. 뜨끈한 카레 한 그릇이 고파지는 겨울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