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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고향집

조지숙(완도읍 출신 서울향우)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15.09.23 14:33
  • 수정 2015.11.03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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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숙(완도읍 출신 서울향우)

담벼락 대신 탱자나무가 울타리를 대신하고 손바닥만한 텃밭에는 부지런하시던 어머니의 손길이 닿아 제철 채소들이 푸릇푸릇 했던 곳, 지금도 눈감고 찾아 갈 수 있을 것 같은 그리운 내 고향집이다.

그리 넓은 집도 아니었던 것 같은데 집을 나눠 세를 내 주는 바람에 여러 가족이 북적됐었다. 우리집인데도 불구하고 안방과 양 칸에 있던 방들을 온전히 우리 4남매를 포함 해 가족들이 써 보지도 못하고 그렇게 고향집을 떠나게 됐다.

그래서 항상 그리웠다. 오직 우리 가족만이 한 집에서 살아 본 행복을 얼마 못 느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항상 미련이 남았던 이 집이 세입자의 부주의로 불이 나버렸다는 소식을 들었다. 10대 초반에 고향을 떠나 온 나로서는 그 집에서의 추억이 대부분인데 그 한 토막의 추억마저 기억 속으로 묻어야만 했던 것이다.

그래서였을까? 온 가족이 떠나온 고향이었기에 정기적으로 고향방문은 쉽지가 않았다. 더욱이 그리움 속에 있던 고향집이 타 버리고 난 후에 내 고향 완도는 낯설고 어색하기만 했다. 결혼 이후 여행 삼아 갔던 고향마을 완도읍 군내리 3구, 어릴적 형제들과 살을 맞대고 자던 방도 엄마가 가꾸시던 텃밭도 우리집 오리가 좋아하던 또랑도 흔적 조차 없었다. 방치된 느낌의 내고향 집터! 널부러진 잔해들 사이 행여 추억 하나라도 움추리고 있으려나 툭툭 쳐 보지만 얼마나 시간이 지났나, 딱딱하게 굳어버린 잔해들이었다.

우리형제들은 지난 해 막내까지 모두 제짝을 만나 결혼을 했고, 형제들이 모이면 요즘 고향집 이야기를 부쩍 하게 된다. 아마 모두들 그때의 추억을 가슴속에 간직하고 가끔 꺼내만 보다가 이제 나이를 먹고 형편도 나아지니 우리들만의 기억이 아닌 새로 일군 가족에게까지 추억을 전달하고 싶은가 보다.

낼 모레면 추석이다. 우리 가족들은 또 완도 고향집 이야기를 하게 될 것이다. 언젠가는 누군가에 의해 새로운 집이 지어지고 또 다른 이의 추억을 쌓게 되는 집이 될 것이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내가 살아가는 곳이 어디가 되건, 내 고향은 ‘완도‘라는 것이 변하지 않는 것처럼, 내 고향집 그 집터는 언제까지나 내 고향집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꿈 궈 본다. 고향 집 그 곳, 그 자리에 새로이 일군 가족들과 추억을 만들 수 있는 보금자리를 만들어 보는 것이다. 아마도 이번 추석을 보내면서 우리 형제들은 우리들의 추억으로 내 고향집을 만들고 허물기를 반복하며, 내 고향 완도에 대한 향수를 달래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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