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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도에 웃음의 씨앗을 뿌린 사람

완도를 희망하는 사람들: 김영식 남부대학교 교수

  • 박남수 기자 wandopia@daum.net
  • 입력 2015.07.15 21:27
  • 수정 2015.11.04 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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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7일 김영식 남부대 교수가 완도군 문화관광해설가 교육생들에게 '웃음으로 소통하라'를 주제로 특강하고 있다.


군대 마치고 첫 발령 받은 고흥 학교에서 밤 사이 불이 났다. 처음 숙직 당번을 선 초임 교사가 아침에 일어나 보니 학교는 불에 타 없어졌고 그후 그의 인생은 많이 바뀌었다. 이듬해 전남도 교육청 징계위원회는 그를 완도로 보냈다. 그때 김영식 교수(50, 현재 남부대 무도경호학과)의 나이 27세였다.

1993년 완도중학교 체육교사로 부임한 김 교수의 완도 생활이 그리 만만하지도 또 편하지도 않았다. 지역 사회와 학교 아이들과 자신을 위해 몸과 마음을 불사른 기간이었다. 울면서 왔지만 그때부터 그의 꿈을 향한 노력은 시작됐고 그런 그에게 완도는 제2의 고향이 되었다.

처음에 방을 구하지 못해 공설운동장 창고에서 한 동안 밤을 지새웠다. 학교 급식이 없던 시절 점심 굶는 아이들을 위해 군 부대에서 쌀을 얻고 주변으로부터 반찬을 구해 그들의 점심을 해결해 주었다. 중학교 역도부 아이들에게 정육점과 닭집 주인의 협찬을 받아 고기를 먹여 가며 대회를 준비했다. 그런 노력 끝에 아이들은 전국 대회 우승이라는 놀라운 결과를 가져왔다.

봉사단체 회원들과 함께 안 쓰는 신발, 옷, 가방 등을 모아 이웃과 서로 나누었다. 학교를 졸업한 아이들에게서 참고서를 받아 후배들에게 건네 공부할 수 있게 했다. 평소 배워왔던 판소리, 민요, 풍물 등을 주민들과 아이들에게 가르치며 또 배웠다. 멀리서 강사를 초대해 함께 배우며 완도에 국악과 문화의 씨앗을 뿌렸다. 그렇게 완도에서 보낸 6년의 시간 동안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도 결코 학문 연구의 끈을 놓지 않았다.

완도와 완도를 떠나 광주에서 교직 생활을 하면서도 그의 관심은 늘 한 곳에 모아졌다. ‘여생을 어떻게 사는 것이 올바른 삶인가’ 또 ‘어떻게 해야 작은 학교를 넘어 세상의 큰 운동장에서 모두를 위해 비전을 나눌 것인가?’ 그의 결론은 ‘웃음’이었다. 자신이 가진 달란트는 모두를 재미있게 하는 것이 웃음이었다.

김 교수는 완도에 있을 때부터 단 하루도 쉬지 않고 웃음을 연구하고 고민했다. 불혹의 나이에 교직을 그만 두고 본격적인 웃음강사를 시작한지 3년만에 최고의 웃음박사가 되었다. 또 3년 뒤에 대학교수가 되었다. 신지식인상, 사회공헌대상, 성공대상, 혁신리더 대상, 경영혁신 대상 등 그의 이력은 화려하다. 김 교수는 요즘 전국의 대학병원에서 암환자들을 위한 웃음치료, 전국 기관들과 지방자치단체의 웃음특강, 대학과 기업들에서 펀 경영, 잡지, 신문 등 기고, 방송 출연으로 잠시 쉴 틈이 없다.

그 사이 완도에도 여러 번 다녀갔다. 언젠가 그의 자녀들과 완도를 방문했을 때, 이곳저곳을 답사하며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기도 했다. 어디 한 곳도 그의 땀과 눈물이 배어있지 않은 곳이 없었다. 그는 아이들에게 “오래 전 아빠가 여기서 닭을 잡았다”고 말해 주었다.

또 완도군보건의료원이 초청해 암 등 난치병 환자들 200명을 대상으로 웃음치료 강의를 한 적이 있었다. 강의가 끝나고 돌아가는 노인들 모두가 하하하 웃으며 나가는 것을 원장이 보더니 “보건 공직 생활 30년만에 이렇게 많은 이들이 웃으며 의료원을 나간 경우가 처음이다”며 몇 번을 더 청했고 보건직 직원들을 대상으로 특강하기도 했다.

울며 완도에 왔다가 웃으며 떠난 자신의 경험을 얘기하며 앞으로 완도는 웃음을 팔아야 한다는 제안에 당시 군수는 웃음페스티벌로 응답했다. 또 웃음강사 양성으로 보답했다.

김 교수는 “아주 작은 평수의 얼굴에서 무려 7,000 가지 이상의 표정이 만들어진다”며 “웃음이 산업이 되는 시대가 왔다”고 말한다. 또 최고의 명약은 웃음이라고 강조하는 그의 웃음의 씨앗은 어쩌면 완도(莞島)에서 싹이 텄는지도 모른다.

완도중학교 체육교사에서 대한민국 웃음박사로 성공한 엔터테이너 김영식 교수가 지난 7월 7일 완도군 문화관광해설가 수강생들에게 한 특강에서 “여러분들이 밝게 웃을 때 관광객들이 완도를 웃음의 섬, 건강의 섬, 치유의 섬으로 여길 것”이라고 말했다.

완도에 웃음의 씨앗을 뿌린 이는 그이지만 그를 웃음박사로 잉태한 곳도 다름 아닌 완도이리라. /박남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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