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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살 내 결혼 사진, 내고향사진관에서 찍었어”

옛 거리를 찾아서 3

  • 위대한 기자 zunjo@naver.com
  • 입력 2015.04.16 10:33
  • 수정 2015.11.09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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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길씨는 청산면 신풍리에서 슈퍼와 함게 중앙사진관(구 내고향사진관)을 운영하고 있다.


1883년 서울 중구에 우리나라 최초의 사진관이 문을 연후 백년이 넘는 시간 동안 수많은 사진관들이 태어나고 사라졌다. 디지털 카메라가 일반화되고부터 사진관이 사라지는 속도에 가속이 붙고 있다. 어디서나 핸드폰을 꺼내들고 누구나 사진을 찍는 시대, 눈이 부시게 밝은 조명과 함께 ‘찍습니다! 하나, 둘, 셋’ 하던 사진사의 목소리도 사라져가고 있어 안타깝다.

이십년 전 완도읍만 해도 사진관을 쉽게 볼 수 있었지만 현재 영업을 하는 곳은 몇 곳 되지 않는다. 늘 카메라와 함께 다녀야하고 사진에 관심이 많았기에 완도 최초의 사진관은 어디이고 아직도 남아있는지 늘 궁금했었다.

우연히 청산도 신풍리 버스정류장에서  만난 지복율(청산면 신풍리, 81) 할아버지를 통해 일제강점기 부터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사진관이 청산도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청산도는 일본과 가까워 최신 문물을 빠르게 접할 수 있었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일제강점기 당시 해남에서 핫바지 입을 때 우린 양복 입고 다녔지”, “22살 내 결혼 사진을 ‘내고향사진관’에서 찍었어. 돌아가신 어머니 팔순 때 가족사진도 그 사진관에서 찍었지”라며 내고향사진관의 추억담을 들려주었다. 그  당시 청산도의 중심은 청계리와 신풍리였다고 한다. 일본에서 사진 기술을 배워와 청산도 청계리에 처음 내고향사진관을 열었던 고 지만호 선생의 뒤를 이어 형제들이 사진관을 운영했으며 현재는 삼형제 중 막내가 사진관을 지키고 있다고 한다.

선친과 두 형들에 이어 내고향사진관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지정길(74) 씨에 의하면 완도출신 6명이 일본에서 사진을 공부하고 돌아와 완도읍과 청산면에서 사진관을 시작했다고 한다. 완도 최초의 사진관이 생겨난 것이다. 그 시기가 일제강점기라는 것만 알 뿐 정확한 연도를 기억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한다. 지 씨는 19세 때부터 큰형에게 사진을 배워 50년 넘게 사진사의 길을 걷고 있다. 내고향사진관은 30여 년 전 청계리에서 신풍리로 이사 오면서 ‘중앙사진관’으로 이름이 바뀌었고 현재는 슈퍼와 함께 운영하고 있다.

지 씨는 "한복에 지게 지고 돌담길 오르는 사진을 찍어두지 못한 것이 아쉽다. 그 때는 먹고 살기 바빠서 그런 풍경사진은 찍을 생각도 못했다"고 한다. 백년에 가까운 역사를 가진 사진관을 물려주고 싶지만 사진관 운영만으로는 생활하기 어려워 물려받기를 원하는 사람이 없다고 한다. 그는 아직도 청산과 인근 섬을 다니며 행사 영상 촬영, 급사진, 증명사진을 찍고 있다.

디지털 사진기에 밀려 사라져가는 사진관의 추억을 떠올려 본다. 남는 건 사진뿐이라며 기념할 일이 있을 때마다 사진관에 갔었다. 사진관의 쇼윈도와 벽에는 행복한 표정으로 웃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늘 액자에 담겨 걸려 있었다. 청산주민들도 내고향사진관에서 찍었던 사진 한 장으로 생애 의미 있던 그날의 순간들을 떠올릴 것이다.

 

▲내고향사진관을 운영할 때부터 사용했던 오래된 사진기들

 

 

▲60여 년전 찍었던 사진들을 모아둔 지정길 씨의 앨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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