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학생 열 명이 안 되면 학교를 없애고 거점고에 통합한다. 불가피한 측면이 있음을 안다. 대신 거점고 하나에 여러 지원이 집중된다. 교육의 질도 그만큼 개선될 거다. 그런데 최근 그 학교에 가보니 난장판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아이들이 공부하는 교실 밖 복도와 공사현장은 철제 셔터 하나의 경계만 있을 뿐이다. 아무리 방학 중 학습이라지만 이 정도라면 도를 넘어서는 거다. 갑자기 아이들이 불쌍해졌다. 그들은 다만 운이 없는 것일까. 다가오는 봄이 오면 저 대토목공사가 끝날까. 내가 중3 부모라면 심각하게 고민했을 거다. 내 아이가 저 공사판에서 즐겁게 공부할 것을 기대하기 참으로 어려울 테니 말이다.
대학만큼 으리으리한 캠퍼스로 변모해가는 거점고를 보면서 문득 우리 지역 고등학교들의 대학 입학 결과가 궁금해졌다. 투입과 산출을 비교해 보고 싶었다. 그래서 완도교육지원청에 정보공개청구를 했다. 수도권과 지방 소재 대학, 교육대, 전문대 등의 입학 결과를 알려달라고 했다. 그랬더니 교육지원청은 내게 상부의 지시라며 공문 하나를 메일로 보냈다. ‘고교 서열화 예방을 위한 입시 결과 등 정보 관리 철저 협조 요망’이란 제목이다.
공문에 이런 내용이 있다. ‘일부 언론사 및 사교육 업체의 대학 입시 결과 수집 및 발표로 인한 전국 고등학교 서열화 조장 예방을 위해 언론이나 사교육업체 등에서 입시 결과를 요청할 때 응하지 않도록 요청’한다는 것이다. 전라남도 교육감의 공문이다. 내가 속한 완도신문도 그 ‘몰지각한’ 일부 언론사에 들어갔나 보다.
고교 서열화 예방 목적이라니 누가 말리겠는가. 공문 내용에 백번 공감한다. 그렇게 되길 바란다. 대학 입학 실적에 따라 고등학교를 줄 세울 생각 추호도 없다. 사실 관내 학교들은 고만고만 도토리 키재기로 그럴 필요조차 없지 않은가. 그래서 나도 교육청에 했던 청구를 이 자리를 빌어 철회한다. 굳이 고교 서열화 예방 차원이 아니더라도 일류 대학에 합격하지 못한 아이들의 상대적 박탈감 퇴출 차원에서 그렇다.
이제 높은 데서 공문까지 내려왔으니 전국 고등학교별 서울대 입학 순위는 신문에 나오지 않을까. 거리에 누구누구 딸(아들) S대 합격 현수막은 찾아볼 수 없을까. 좀 더 나아가 사법고시 합격 현수막도 사라지면 좋겠다. 어디 그뿐인가. 누구누구 과장님 승진 축하 현수막도 이제 좀 치우면 좋겠다. 부끄럽지도 않은가. 승진하지 못하고 영전하지 못한 이들의 상대적 박탈감과 소외감을 생각한다면 이제 제발 그 무지의 소치만큼은 거두길 바란다.
설을 몇 일 앞두고 단행된 정기인사에서 승진하지 못하고 먼 데 섬에서 벗어나지도 못해 소외된 다수의 공무원들에게 위로의 악수를 건넨다. 높은 대 못가고 낮은 대학 들어간 후배들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처음 시작은 미약하지만 나중은 창대하리란 걸 믿기 때문이다. 다들 힘 내시라. 그리고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