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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화도에서 일어난 '오병이어 기적'

완도를 희망하는 사람들: 노화 섬사랑평생교육원 이두선 원장

  • 박남수 기자 wandopia@daum.net
  • 입력 2015.01.22 12:26
  • 수정 2015.11.20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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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과정이 끝난 1월 19일 오후 2시가 되기 전에 여성 노인들 다섯이 노화읍 대우병원 2층 한글교실에 모였다. 넷은 둘씩 책상 앞에 자리를 잡고 연필을 깎더니 교재를 따라 쓰기 시작했다. ‘삼치 잡으러 가자’ ‘아들 보러 가자’ 컴퓨터 앞에 앉은 분은 한글타자연습을 한다. ‘야 야 야 내 나이가 어때서...’

한글을 배우는 고일심씨는 제법 유명한 분이다. 지난해 9월 성인문해교육 전국 시화전에서 우수상(2등)을 수상했다. 수상작 이름이 “오매 잘 생겼능거!‘이다. 평생 까막눈으로 살다가 다 늙어서 배운 한글로 자신의 이름을 썼을 때 기쁨을 표현한 걸작이다.

그 옆에서 더 기쁜 표정으로 서 있는 이가 있다. 노화도 섬사랑 평생교육원 원장 이두선씨와 부인 정정숙씨다. 이들 부부가 지난 10여년 동안 노화도에서 겪은 기적 같은 일들은 결코 간단치 않다.

낯선 노화도에 처음 들어온 것은 20여년 전 일이다. 목포에서 태어나고 자란 이 원장이 조경회사에 다니다가 건어물 사업을 해보기 위해 친구를 따라 들어왔으나 IMF 여파로 큰 재미를 보지 못했다. 노화도에서 계속 살기로 결심했다.

이들이 한글학교 일을 시작한 것은 우연한 계기에서 비롯됐다. 어느날 박스를 머리에 이고 읍내로 택배 부치러 가는 노인을 차에 태웠다. 사정을 더 묻지 않았다. 평소 옆집 할머니의 도움으로 택배를 쓰고 부쳤는데 그 할머니가 서울 가는 바람에 노인은 누구에게 부탁도 못하고 창피해서 직접 택배회사로 가는 길이었다. 노화에 글을 모르고 살아가는 분들이 많다는 것을 이씨 부부는 그때 처음 알았다.

이 원장은 이듬해인 2004년 세계문맹자선교회가 개최한 문맹자지도 교사들을 위한 교육에 참가했다. 노화, 보길, 소안 지역에서 26명이 참여했다. 대부분이 목사들이었는데 이 원장만 평신도였다. 참가자 전원이 교육을 수료하고 자격증을 받아 사업을 시작했다. 의욕은 강했으나 교육 방법을 제대로 몰랐다. 교육 때 사용한 교재 내용이 노화도 현실과 전혀 맞지 않은 것도 문제였다. 그때부터 이 원장은 섬사람들에게 맞는 자신만의 교재를 만들기 시작했다.

교사들이 자신들의 마을에서 방문교육을 시작했다. 그러나 6개월 뒤에 이 일을 계속한 이는 이 원장뿐이었다. 다들 그만 두었다. 소문을 듣고 주변 마을 이장들이 그에게 부탁했다. 이렇게 2004년부터 2009년까지 이 원장이 노화 14개 마을을 직접 방문해 만난 학습생은 270명이 넘는다. 대부분 여성 노인들로 낮에 논밭과 바다에서 일을 하고 교육은 밤 시간에 이루어졌다. 그동안 교재 제작 비용과 교통비 등은 대부분 자비로 충당했다. 2005년 이 원장 부부에게 한글을 배운 노인들이 ‘사랑의 밥상’을 차려주었던 일이 있는데 그 일이 그해 2월 KBS 6시 내고향 ‘사랑의 밥상’ 프로그램으로 방영됐다.

지금 이 원장의 집 방 하나는 행정실로 쓰인다. 컴퓨터와 복사기, 프린터, 교재 제작에 들어가는 장비들로 가득하다. 모두 자비로 구입한 것들이다. 그러다 완도군에서 2009년부터 관심을 갖고 지원을 하기 시작했다. 그 중 가장 큰 도움은 교실이다. 노화읍사무소 관계자들이 대우병원 측과 협의 끝에 2층에 교실을 마련했고 공과금도 지원했다. 그때 ‘완도 사랑의 한글학교’를 ‘섬사랑 평생교육원’으로 개명하고 국가평생교육진흥원에 성인문해교육기관으로 정식으로 등록했다.

현재 노화 섬사랑 평생교육원을 포함해 완도군에 4개의 성인문해교육기관이 있다. 그동안 많은 분들이 이 원장을 찾아 교수법과 교재, 내용 등에 대해 배워갔다. 해남, 목포, 영암 등에서 왔고, 최근 시작한 고금한글학교 이홍길씨도 그를 만나러 왔다.

지금은 완도군 평생학습 과정에 포함돼 지원을 받는다. 정규과정은 3월에 시작해 11월에 끝난다. 매주 이틀(월,화) 수업한다. 교실 집체교육과 방문교육을 포함해 총 26명이 2014년에 수료했다. 방학인 요즘은 보충과 심화과정이 진행되고, 컴퓨터와 한자 그리고 기초영어도 교육한다. 수료생 대부분은 새 학기에도 계속 참여할 예정이다.

문해교육의 성패는 노인들에 대한 동기부여에 있었다. 노화도 노인들의 특수한 상황, 살아온 배경 그리고 자존감에 대한 이해가 우선이었다. 노인들이라고 해서 조용히 뒤로 물러나 있으라는 것을 싫어했다. 과감하게 나서도록 용기를 북돋워주니 학습성과는 저절로 나타났다.

 

 

 

 



은빛봉사단의 결성도 그 일환이었다. 전복으로 부유해진 노화도에 빈병들이 많았다. 지역사회를 위한 사업으로 이 원장과 학습생들 모두가 2009년부터 빈병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첫해에 176만원, 2010년에 220만원, 2011년에 200만원 정도를 빈병을 팔아 마련했고, 수입의 대부분은 지역 사회를 위해 사용했다. 빈병 팔아 돈 벌 생각이었다면 결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노인들은 콩나물 시루처럼 자기 안에 일생의 경험과 기억으로 가득차 특별한 동기부여가 없으면 아무 것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만원버스처럼 누군가 내려야 탈 수 있었다. 그래서 이 원장의 교육법은 주입하는 대신 오히려 빼내고 비우는 것이었다.

또 학습생들은 자신들을 대하는 교사에게 사심이나 다른 목적이 있는지를 본능적으로 알아차렸다. 이 원장의 진정성과 진심이 통했다. 함께 시작했지만 인력과 자금 등 부족함이 없고 전도와 성경 독해 등 목적이 분명했던 교회 목사들의 시도가 실패했던 까닭은 지역 노인들에 대한 이해와 진정성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이 원장이 가르친 노인들은 500명이 넘는다. 장터에서 좌판 깔고 생선, 과일, 채소를 파는 제자들이 길에서 이 원장을 만나면 차에 이거저거 실어준다. 처음에는 어려워 극구 사양했지만 이제 그들이 주는 것을 받을 줄도 안다. 그것이 인정이기 때문이다.

이 원장이 직접 만들고 꾸미는 교재에는 노인들이 살아가는 이야기가 있다. 바다 이야기, 섬 생활, 또 그들이 즐겨 부르는 노래도 나온다. 요즘은 이 원장을 돕는 이들도 생겼다. 방문교육 때 마을 젊은 사람들이 보조교사로 나선다.

그의 소망은 지금까지 해왔던 사업을 노화, 보길뿐만 아니라 완도 전 지역으로 확대하는 것이다. 우선 완도 지역 4개 문해교육기관이 참여하는 합동 백일장 대회를 완도군에 건의했지만 아직 대답이 없다. 한글학교가 없는 섬까지 사업이 확대되길 바란다.

한글을 배우며 바뀌는 엄마의 모습에 자식이 변하고, 그 자식의 변화에 다시 엄마가 변하는 놀라운 연쇄반응이 생겼다. 요즘 한자와 영어도 가르친다. 남성 노인들을 위해 인터넷 강좌에도 관심이 많다. 또 다문화가정 여성들을 위한 한글수업도 하고 있다. 그의 나눔은 끝이 없다.

우연한 기회로 한글교실을 시작한 노화 섬사랑 평생교육원 이두선 원장은 이렇게 말한다. “이분들(노인들)이 한글을 익혀 사회의 어른으로 남아주면 좋겠다. 스스로 한 가정의 어른으로 자존감을 지킬 때 전체 사회가 건강해지고 질서가 유지되는 것이다. 나는 이분들에게 조그만 것을 드린 것뿐이다. 그 결과 기뻐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훨씬 더 큰 행복을 느꼈다”고.

설교를 듣기 위해 가난한 수만 군중들이 멀리서 예수를 찾았다. 설교 후에 다들 먹을 것을 걱정했다. 그런데 가진 것 없는 한 아이가 자기 것의 전부를 내놓았다. 떡 5개와 생선 2마리. 그러자 기적이 생겼다. 수만 군중을 먹이고도 남을 충분한 음식이 생긴 것이다. 사람들은 이를 오병이어 기적이라고 부른다. 노화 섬사랑 평생교육원 이두선 원장이 자신이 가진 작은 것(한글)을 아무 욕심 없이 노화도 노인들에게 내놓았을 때 많은 변화들이 일어났다. 그 변화를 보고 이 원장은 더 큰 행복을 느꼈다. 노인들이 선생이고 이 원장이 학생이다. 노화도 사람들 모두가 만들어낸 오병이어의 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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