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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도인보다 완도를 더 사랑한 외국인 "있다? 없다?"

완도를 希望하는 사람들 ⑥ 캐나다 출신 '멜리사'

  • 박남수 기자 wandopia@daum.net
  • 입력 2014.09.25 00:02
  • 수정 2015.11.19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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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멜리사가 지난 20일 중앙초등학교에서 자신이 가르쳤던, 지금 고3이 된 학생들을 만나 수다를 떨고 있다.


그녀가 완도에서 살았던 기간은 2년이 전부다. 2006년부터 2008년까지 완도 중앙초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친 원어민교사였다. 1년 더 서울에서 일한 뒤 2010년 한국을 떠나 고향 캐나다로 돌아갔다. 그녀가 4년 만에 다시 완도를 찾았다. 그리고 예전처럼 맨 먼저 자전거를 빌렸다. 레이머스 멜리사(33세).

완도신문과 멜리사와의 인연은 깊다. 그녀의 수업 이야기가 본지에 실렸고(2007. 3), 고별 인터뷰(2008. 8) 그리고 학생들과 친구들과 마지막 인사(2008. 7)도 본지 지면을 통해서 했다. 그런 그녀를 다시 만났다.

완도를 떠나 캐나다로 돌아간 뒤 대학원에서 사회학 석사과정을 마친 멜리사는 현재 환경보존, 특히 농업 관련된 정부 기관에서 일하고 있다.

가족들과의 휴가도 마다하고 다시 한국을 찾은 이유가 뭘까? 그녀는 이렇게 대답한다. “금년 휴가 때 한국에 다시 가고 싶었다. 한국의 덥지 않은 9월과 높은 하늘, 특히 텅 빈 해변을 좋아한다. 신지 명사십리가 딱이다.”

한국에 도착한 그 다음 날인 12일, 그녀는 완도에서 친구들을 만나고 있었다. 완도에도, 고금도에도, 거리에서도, 식당에서도, 친구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뿐인가? 제주로, 여수로, 부산으로, 대전으로, 속초로, 다시 수원으로, 서울로, 일산으로 이동했다. 어디서든 친구를 만났다.

그 중에서 완도를 최고로 꼽는다. 완도 바다와 섬과 패밀리 찜질방과 친구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녀가 완도에서 만났던 학생들과 친절한 택시 기사들을 떠올리고 이야기한다. 밤에 오른 서망산에서 야영을 한 뒤 아침에 일출을 보고 내려와 중앙초등학교로 출근했던 이야기도 전한다.

그런 그녀에게 완도는 전에 비해 많이도 변했다. 항구로 들어오는 뱃고동 소리가 완도 전체로 메아리치는 것과, 여름밤 친구들과 함께 명사장에서 수영하며 놀았던 것을 결코 잊을 수 없다고 한다.

고금도 충무사를 둘러본 뒤 방명록에 남긴 그녀의 메시지는 ”장군님, 오랜만입니다.“(“Long time no see. General Lee!") 바쁜 일정 때문에 금일에 다시 가지 못하는 게 가장 아쉽다는 그녀는 거기서 만났던 사람들에게 인사를 대신한다.

나이 들면 완도를 떠나는 젊은이들에게도 한 마디 한다. ”너희들이 태어났던 고향을 절대 잊지 마라. 완도는 좋은 곳이다“라고.

그녀에게서 영어와 세계 그리고 사랑을 배웠던 많은 아이들이 지금 고3인 까닭에 서로 만나 맘껏 뛰놀 수 없음을 아쉬워하는 그녀, 감기약 먹어가며 하루 남은 일정에도 신지 명사장으로 향하는 캐나다 출신 그녀, 내일이면 호주 친구들을 만나러 완도를 떠나야 하는 그녀는 기어이 눈물을 쏟아냈다.

그녀가 또 완도를 떠나면서 완도 사람들에게 남겼던 인사다.

”다시 완도에 올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항상 좋은 추억을 갖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I hope to come back to visit Wando. I always have happy memories. Thank you!)

 

 

 

 

 

 

▲ 멜리사가 지난 21일 고금도 충무사 월송대를 방문했다. 충무공 가묘터에 풀이 나지 않는 것을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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