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그녀에게 소리 한 번 해보라고 하면, 그 사람이 비록 초면일지라도 육자배기나 흥타령이 바로 나온다. 그 뒤에 나오는 새설은 더 길고 걸다. 당산리 임정자 엄니 얘기다(78).
군외면 화개리에서 나고 자랐다. 뫼구, 소리, 춤은 그녀 집안의 내력인 것 같다. 부친이 그러했고 지금 조카(임현빈)가 명창으로 활동하고 있음을 아주 큰 자랑으로 여긴다. 한번 새설이 풀리면 결국 ‘야시리’가 나오는데 사전에도 없는 그 말 뜻을 아직도 모른다.
청해진열두군고 길놀이나 공연에서 시주승 역할을 했던 분이 임정자 엄니다. 스님보다 더 스님답다. 작달막한 키에 잿빛 승복을 입고 패랭이를 썼는데 머리만한 큰 목탁을 들었다. 굿판과 멀찍이 떨어져 목탁을 쳐대는데 검은 색안경을 꼈다. 진짜 스님인줄로 모두가 착각할 정도다. 그 모습을 이제 더 볼 수 없다. 다리가 불편해 보조기에 의존해야 겨우 걸음을 뗄 수 있기 때문이다.
임정자 엄니를 볼 수 있는 곳은 오일시장과 매일시장이다. 스스로 ‘오일시장 왕초’라고 한다. 거기서 나물과 생선, 조개 등을 손질해서 판다. 이 일을 50년 가까이 해왔다. 그래서 그녀를 ‘반지락녀’로 부르는 이들이 많다. 그래서 반지락을 얼마나 빨리 까는지 물었더니 돌아온 답은, “빨리 깐다고 잘 까는 게 아니라 쎄(혀)가 상하지 않게 까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조리하기 좋고 맛도 살아난다. 또 그렇게 까야 힉한(흰) 물이 나온다.”고 했다.
중앙시장(매일시장) 입구에는 늘 그녀가 있다. 오일장에도 빠짐없다. 도라지나 고구마 줄기를 다듬거나 밤을 까기도 하고 명태포를 뜨고 젓갈을 담아 팔기도 한다. "반지락 한 되 까야 만원 떨어진다"는 ‘반지락녀’는 완도 문화에 대한 애착은 크고 깊다. 그래서 쏟아내는 그녀의 말은 거침없고 과감하다. 그러나 그녀의 말을 귀담아 줄 이 그리 많지 않은 세상이 야속하다.
작은 손으로 반지락을 까온 반백년의 세월에서 우러나오는 우리 전통과 문화에 대한 임정자 엄니의 이야기는 마치 그녀가 깐 힉한 반지락 국물과도 같이 진하다. 문화 관련 상품이 수도 없이 나오고 문화의 홍수 속에 살아가지만 정작 우리는 문화에 굶주려 사는 건 아닌지 모른다. 그래서 임정자 엄니의 눈에 보이는 요즘 세상은 별 볼 일 없을 지 모른다.
그녀가 늘 하는 말은 “느그는 야시리를 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