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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해진열두군고의 영원한 상쇠, 윤영호 씨

완도를 希望하는 사람들 ③ 완도 문화예술교육사

  • 박남수 기자 wandopia@daum.net
  • 입력 2014.08.27 16:21
  • 수정 2015.11.15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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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해진열두군고 연습실에서 강사인 윤영호 씨가 신입회원들을 대상으로 지도하고 있다(2009년 3월 24일).


지난 7월 23일 금당도 가학항에서 완도농협 페리2호 취항식이 있었다. 풍물패가 흥을 돋으며 진법을 펼치고 있었다. 둥글게 원을 만들고 또 달팽이 모양 원의 안쪽으로 상쇠가 파고들더니 어느새 풀어지고 악기 별로 3개의 원이 생겼다가 다시 11자 모양으로 진법이 바뀌었다.

통일신라 시대 장보고 대사의 해상 전투 장면을 열두(12) 개 장단으로 구성했고 또 풍물패가 이를 다시 진법으로 펼친다. 군사들의 북놀이라 군고(軍鼓)다. 그들이 타는 배가 군곳배일 거다.

이날 축하공연을 펼친 사람들은 청해진열두군고진법(이하 열두군고) 군외면 풍물패로, 각 읍면에서 가장 활동적인 단체다. 생일도와 금당도를 제외한 읍면 지역 모두에 열두군고가 있다. 이들을 지도해 온 이가 바로 열두군고 전 회장이자 국악협회 완도군지부 부지부장인 문화예술교육사 윤영호 씨(60)다. 그는 현재 소안, 노화, 보길도, 완도에서 초중등부 창의적 체험활동 과목을 지도하는 풍물분야 예술강사이자 완도군 평생교육원 강사로 활동한다.

완도에서 나이 좀 된 사람들에게 윤영호 씨는 청미제과 사장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그는 1982년부터 청미제과를 운영했다. 당시 청미제과는 학생들과 젊은 층의 데이트 장소였고 맞선 보는 명소였다. 그러다가 1991년에 처음 잡은 꽹과리는 그의 인생을 바꾸었다. 어릴 적에 고향 동네에서 보고 들어왔던 풍물이 그리 좋았더란다. 함께 풍물을 배웠던 젊은 사람들이 청해진 풍물패 한들을 결성하고 완도읍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그들의 활동을 지켜보던 장좌리 故 김봉도 옹(전 장좌리 당제당굿 기능보유자)으로부터 열두군고 얘기를 듣고 한들을 그만 두었다. 김 옹의 기억 속 구전 장단을 채보하고 진법을 완성해 나갔다. 그렇게 우리 완도 굿에 빠져들었다. 그렇게 정리된 장좌리 당제당굿은 현재 전라남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당제당굿이 장좌리 마을 사람들로 구성된 반면에, 완도읍 사람들은 1995년 청해진열두군고진법이란 사회단체를 출범시켰다. 초대 회장인 김의일 씨(현 완도문화원장)에 이어 윤영호 씨는 2대 회장을 맡았다. 열두군고는 매년 일반인을 대상으로 풍물 강습회를 열고 있다. 올해 20기에 이르는 동안 200여 명 수료생을 배출했고, 이심애 선생(대야리)과 함께 윤영호 씨는 독보적인 강사다.

매년 5월 열리는 장보고축제에서 열두군고는 길놀이와 진법 공연을 한다. 또한 매년 11월 각 읍면 열두군고패가 서로 진법놀이 경연대회를 펼친다. 그간 갈고 닦은 기량을 뽐내는 열두군고패들의 축제의 장이다. 열두군고는 현재 완도군 향토사료 1호로 지정된 상태다.

올해 완도에서 장보고축제는 없었다. 해조류박람회 개최 탓이겠으나 내년에 다시 열릴 장보고축제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장보고축제에서 장보고를 찾는 일이 점차 어려워져 간다는 거다. 그만큼 열두군고 활동도 시들하다.

적들을 향한 장보고 대사와 청해진 군사들의 외침과 몸부림이 드라마틱하게 집약된 악극이 청해진 열두군고 진법이다. 장보고축제를 살리는 일은 어쩌면 윤영호 씨 손에 달렸는지도 모른다. 그는 청해진 열두군고진법의 유일하고도 영원한 상쇠이기 때문이다. 청해진의 우두머리 장보고가 아니었던가?

 

 

 

 

▲ 윤영호 씨가 청해진국악대전 농악경연대회에서 운영위원장으로 대회를 진행하고 있다. 각 읍면 풍물패들이 각자의 기량을 겨루는 대회다(2013년 8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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