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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교를 보면 한국이 보인다

  • 완도신문 webmaster@wandonews.com
  • 입력 2009.02.19 10:19
  • 수정 2015.12.07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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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을회관 오른쪽으로 넓게 자리한 폐교지. 어디 한군데 성한 곳 없다.

달도는 작고 예쁜 섬이다. 막내딸처럼 완도를 찾는 사람들을 맨 앞에서 마중한다. 사위섬(사후도), 딸섬(달도)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달도 마을 회관 오른쪽으로 넓은 폐허가 있다. 달도초등학교 폐교지다. 담은 허물어지고 골대는 녹슬었다. 화단은 잡풀에 덮여 도깨비 나올 것 같다. 나이 든 플라타너스는 허리가 깊게 패여 아프다. 아마 올 여름에 그늘을 만들지 못할 것 같다. 문짝은 죄다 뜯어가고 유리창은 깨져 외벽 덩굴이 교실 안으로 손을 뻗었다. 검은 염소 똥으로 교실 바닥이 더럽다. 나무판자로 된 복도와 교실바닥은 군데군데 뚫려있다. 넓은 창문 틈으로 햇볕이 자유롭게 든다.

다녀간 건 햇볕만이 아니다. “선영 왔다 감” “명국아 사랑해!” 분필로 꾹꾹 눌러쓴 글씨가 칠판에 선명하다. 창틀에 소주병 가지런하다. 어느 것 하나 성한 게 없다. 그러나 다녀간 그들의 흔적을 보니 옛 시절 꿈과 사랑만은 고스란하다. 영화 타이타닉에서 침몰한 잔해로부터 갑자기 주인공들이 살아나듯 선영이, 명국이 왁자지껄 떠들며 나올 것 같다. 그들은 여기에 왜 왔을까? 거기서 무엇을 느끼며 갔을까?

이 배움터를 세우기 위해 부모, 조부모들은 쌀독을 헐고 주머니를 털었다. 자신들의 배고픔과 가난과 무지를 대물림하고 싶지 않았다. 십시일반 모으고 아껴 마을에서 가장 좋은 땅을 구해 나라에 바쳤다. 학교를 세우는데 힘과 땀을 보탰고 좋은 돌, 좋은 나무는 학교에 기부했다. 그들에게 학교는 세상에서 가장 큰 자랑이자 새로운 세상 그 자체였다. 풍요로운 미래에 대한 보험이자 최초의 펀드투자였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사라지고 강산이 두 번 변했다. 부모들의 원대로 아이들은 열심히 배우고 자라 대처로 나갔다. 대신 남은 부모들은 낡은 폐교처럼 늙었다.

폐교가 결정된 뒤 마을 사람들은 학교 부지를 마을이 갖기를 바랐지만 마음이 가난한 나라는 돈이 더 필요했다. 마을 사람들에게 우선 기회를 줬다지만 누구에게도 그만한 돈은 없었다. 더구나 세상에서 가장 큰 자랑과 자존을 잃은 그들에게 더 이상 재투자 여력은 없었다. 그래서 결국 돈 주는 사람에게 매각되었고, 그 사람은 더 많은 돈을 주는 사람에게 되팔았다. 땅값은 껑충 뛰었지만 마을 사람들은 폐허를 보면서 나날이 기력을 잃어갔다.

그들에게도 요즘 한 가닥 희망은 있다. 늦게라도 보험금을 타는 셈인가? 마을 회관 왼쪽 좁은 공간으로 비스듬히 복지회관 공사가 한창이다. 냉난방 시설은 물론, 찜질방, 의료기구, 런닝머신까지 완비한 3억 짜리 종합복지회관이다. 회관을 중심으로 좌우로 희망과 절망이 공존하는 마을이 오늘의 달도(達島)이다.

 

        △ 사유지로 전락한 염소똥 가득한 달도초등학교 교실 바닥이 더럽다.

 

 

낙도는 완도 맨 끝에 있는 가상의 섬이다. 하루에 한 번 작은 여객선이 들고 나는 아주 외로운 섬이다. 오래 전에 그 섬의 분교가 폐교되었다. 바다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그림 같은 전망에도 그 폐교를 사려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이 학교 또한 부모들의 열성적인 기부와 희생으로 세워졌다. 비록 규모는 작았지만 판검사도, 사업가도 배출한 저력 있는 학교였다.

노인들만 살아가던 이 낙도(樂島)가 이름 그대로 간만에 즐겁다. 학교가 다시 활기를 띄게 된 것이다. 동문들의 관심과 지원으로 교실 하나를 ‘낙도분교 기념관’으로 꾸몄다. 교육청의 협조로 귀한 자료들을 구했고 동문들이 각자 보관하던 자료들을 전시했다. 교과서나 책가방, 도시락, 연필, 공책 등을 정성껏 모았다. 인터넷 카페도 만들었다. 역사박물관이 부럽지 않을 정도였다. 일년에 한 번씩 동문들은 ‘고향방문의 날’을 정해 연로하신 선생님과 고향 어른들을 모시고 감사효도잔치를 벌이고 운동회도 했다. 십시일반 돈을 모아 어른들 식사비와 난방비를 보냈다. 돈을 내는 그들이 더 많은 것을 얻었고 행복했다.

또한 정부의 지원으로 폐허가 된 학교를 리모델링했다. 냉난방 시설이 갖춰졌고 의료시설, 운동기구도 들여왔다. 찜질방은 물론 노래방도 만들었다. 여러 기관과 단체의 도움과 기증으로 작은 도서관도 생겼다. 잔디 운동장에서 노인들이 게이트볼을 즐겼다. 쓰러질 듯 낡았던 마을 회관을 예전 교무실 자리로 옮기니 그대로 ‘종합행정복지문화회관’이 되었다. 마을 사람들의 땀으로 학교가 처음 세워졌듯 이들의 노력으로 다시 학교가 살아났다. 잡초와 덤불을 제거하고 잔디와 꽃을 심느라 노인들의 몸은 지쳤지만 마음만은 젊은 시절로 다시 돌아갔다. 폐교 이래 귀신 나오던 낙도분교는 이제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도시와 농촌이, 떠난 사람과 남은 사람이 아름답게 소통하는 희망과 기쁨의 학교로 탈바꿈했다.

 

 

△ 군외면 삼두리 군외남초등학교 폐교지. 이 마을 사람들은 아직 학교를 버리지 않았다.

 요즘 마을마다 복지회관 공사가 한창이다. 무슨 까닭인지 마을 사람들은 3억이니, 5억이니 하는 천문학적 숫자만을 기억하고 자랑한다. 곧 선거태풍이 불라나보다. 최신식 노래방, 찜질방이 구비된 3억짜리 복지시설이 마치 마약처럼 노인들의 육체적 고통을 잠시 잊게 해줄 수는 있다. 그러나 거기서 나와 폐교를 보며 집으로 갈 때 밀려드는 씁쓸한 마음을 어디서 위로받을까?

완도의 수많은 섬을 가보라. 폐교지는 이제 적당한 가격에 팔리기 위해 주인을 기다리는 매물에 지나지 않는다. 한때 희망의 근거였던 학교가 투기의 대상이라니! 근대화의 기초를 놓았던 사람들이 자기 정체성을 잃고 절망 속에 살아가는 이유일 수 있다. 물질적, 수량적인 성과만이 최고로 대접받는 우리 교육의 현실이자 한국 사회의 슬픈 자화상이다. 주인 잃고 폐허가 된 교실을 찾아 과거를 추억하고 떠나야 했던 이들의 마음을 헤아릴 일이다.

낙도(樂島)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상상의 섬(Utopia)이다. 폐교지를 멋지게 종합행정복지문화회관으로 바꾼 낙도 사람들의 이야기도 지어낸 뻥이다. 그러나 그 상상과 허구를 현실모델로 바꿀 더 멋진 사람들을 기다리는 내 마음은 벌써 기쁘다. 이 얼마나 행복한 상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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