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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최고 훈장 받은 6.25 전쟁영웅‘고마도 뻘수’김기운씨를 아시나요?

고금면 농상리 출신으로 6.25전쟁 당시 중공군 중장을 생포해 화제가 되기도...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08.06.25 01:10
  • 수정 2015.11.20 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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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한국전쟁(6.25)이 발발하자 군에 입대 중공군 장군을 생포하여 미국 최고의 훈장인 금성훈장과 이승만 대통령으로부터 무궁화훈장을 받은 완도인이 있다.

고금면 농상리 출신으로 한 때 군외면 고마도의 뻘밭에서 바다 일을 하던 평범한 청년에서 고독한 전쟁영웅이 된 일명 '고마도 뻘수' 故김기운씨의 삶을 뒤돌아 본다.

김 씨 덕분으로 한국전쟁 직후 중공군에게 잡혀 38개월간 포로생활을 한 당시 전미 24단장 띤소장은 김 씨가 생포한 중공군 장군과 맞바꾸어 풀려난 일화는 왠만한 완도인이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한 때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故김기운씨의 생전 모습

지만 김 씨는 6.25전쟁 58주년을 맞이해 군에서 4억원의 사업비를 들여 24일 제막식을 갖은 완도군참전용사기념탑에 이름조차 올리지 못했다. 이제 외로운 전쟁영웅으로 군민들의 기억속에서 서서히 잊혀지고 있다.  

"미국에 함께 가서 살자.” “무슨 소원이든 다 들어 주겠다.”는 미군 띤소장의 파격적인 제안을 모두 거절한 김 씨는 고향 완도에서 농사지으며 평범하게 살다 1992년 62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베트남 참전용사인 고금면 정옥현(62세,고금면생활협의회장)씨는 김 씨가 군에 입대해 1951년 강원도 철원평야 백마고지에서 중공군 장군을 생포 했던 일을 자세히 들려줬다.

정 씨에 따르면 "김 씨 분대가 저녁에 백마고지로 매복을 나갔어"  "새벽녘이 되자 지친 김 씨는 거기서 깜박 잠이 들었는데 그사이 분대는 철수를 했어"

"얼마 후 잠에서 깬 김 씨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혼자 남겨진 것을 알게 되어 복귀하기 위해 한참을 걸었어"  "김 씨는 낯익은 벙커를 발견하고 들어갔다고 해"  "하지만 중공군 장군의 벙커였던 거지"

"놀란 김 씨는 벙커 안에 있던 수류탄을 발견하고 탈출하면서 터뜨렸어" "이 때 침대에서 잠을 자던 중공군 장군이 잠에서 깨어 탈출을 시도하다 김 씨와 맞닥 뜨린거야."

"중공군 장군은 칠흑같은 어둠속에서 김 씨의 머리를 만져보며(당시 북한병사들은 머리가 짧았음) 적군 병사라는 것을 알고 허리춤에서 권총을 뺀 모양이야."  "이에 놀란 김 씨는 총구를 막으면 발사가 안 되는 줄 알고 엄지손가락으로 총구를 막은 거야."  "하지만 권총을 발사한 모양이야 그때 엄지손가락이 날아간거지."

"손가락이 떨어져 나간 김 씨는 고통 속에서도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육박전이 벌어졌고 두 사람이 뒤엉켜 한참 뒹굴면서 산기슭으로 떨어졌어."

"아군 지역에 떨어져 기절한 두 사람을 아군이 발견하고 중공군 장군은 포로가 되었고 김 씨는 병원에서 의식을 회복했다고 그러더라구."

"얼떨 결에 생포한 중공군은 나중에 최고위 장교인 중장으로 밝혀지면서 김 씨는 일약 전쟁영웅이 된 거지."

"이 후 포로교환 때 38개월간 중공군에 생포되어 있던 미국의 띤소장과 중공군 중장의 맞교환이 이뤄져 띤소장은 김 씨에게 은혜를 입은 거지"

"띤소장이 미국 측에 인도된 후 미국정부는 김 씨에게 감사의 표시로 미국 금성훈장을 수여했고 띤소장 역시 고마움의 표시로 함께 미국으로 가자고 제의한 거야."

정 씨는 이어 "김 씨가 자신의 인생이 화려하게 바뀔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하고 빨리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요구했다고 하더라구"

 

'고마도 뻘수'라는 별칭도 이 때 얻었다. 이승만 대통령으로부터 당시 최고 훈장인 무궁화 훈장을 받고 의기양양하게 제대한 김 씨는 다시 고마도로 돌아왔다.

당시 군외면 사람들은 "아따 뻘수야! 니가 그렇게 높은 사람을 잡아야"하며 부러움 반 질투 반으로 부른 것이 당시 완도인이면 누구나 아는 ‘고마도 뻘수’가 됐다"고 말했다.

부귀영화를 뒤로하고 고향 고금도로 돌아와 농사를 지으며 지극히 평범하게 살다간 김 씨는 완도군참전용사기념탑에 이름을 기록하지 않더라도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완도의 영웅으로 기억 될 것이다.

현재 아내인 박양덕 (73세)씨는 남편 김 씨의 고향인 고금도에서 아들과 함께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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