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도신문에 보도된 후, 독자님들께서 여러 말씀을 주셔서 아직 김신이란 사람이 우리 지역민들께 잊혀지지 않았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장 불행한 사람이 잊혀진 사람이라고 했듯 신문의 역할이 이렇게 소중한 것 같습니다.그리고 지역의 대변자 역을 자임한지 어느 덧 스물 일곱 돌이군요!그간 완도신문은 정론직필(正論直筆)이란 언론의 역할은 물론 지역사회의 발전과 군민의 행복한 삶을 도모하는 일에도 많은 관심과 기여를 하였습니다.더불어 최근 완도신문이 보여주는 청소년 신문과 청소년 기자의 운영은 우리 지역사회의 미래를 꿈꾸게 하는 소중한
완도신문의 한면을 장식할 정도로 거창한 일을 한것은 아니었지만 지난 20여년의 농촌지도사로서의 역할을 한계단 한계단 완도농업의 발전을 위해 진심으로 노력한 점이 조금은 알아 주신 것 같아 행복했습니다.수많은 분들의 따뜻한 격려와 축하의 말씀도 감사했구요. 세상을 바꾸는 힘은 작은 노력의 마음들이 뭉치고 또 뭉쳐 큰 변화의 바람이 될거라 믿으며 완도유자와 약산흑염소산업의 발전을 위해 홧팅하겠습니다!완도신문 또한 정론지로써 지역사회 소식 전달 및 주민 권익을 위해 앞장서 옴은 물론, 각종 사회사업과 특히 군민의 문화적 욕구 충족을 위해
완도신문 창간 27주년을 축하드립니다.완도군민의 신문고이자 과거를 거울삼아 현재를 평가하고 미래를 제시하는 지역언론의 대표문지기로서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지역 곳곳의 고인돌유적지로부터 청동기 해양문화가 본격화된 완도는 백제해양국가를 계승한 장보고의 청해진시대에 동아시아 지중해문화를 화려하게 꽃피웠고, 격란의 임진왜란때 조선 최대수군진영으로 이순신장군을 도와 민관군협동으로 국운을 살렸으며, 일제강점기에는 서남해 항일운동의 성지로 국권을 회복하는 역할을 다했습니다. 오늘날은 대한민국 해양수도 1번지로서 다양한 해양수산업과 관광문화를
신문에 소개 되고 난 후 관공서나 지인들이 유명인사 오셨네요라고 더 알아봐주시고 장난 섞인 인사말도 건네주시고 특히 부모님께서 좋아하시더라고요.저 개인적으로는 부끄럽기도 하고 내고향 완도 고금에서 가정을 꾸리고 바다에서 일하며 살면서 초심을 잃지 않게 마음을 다시 한번 다 잡아주는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부모님께 그리고 마누라와 자식들이 있어서 하루하루 행복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완도신문에 바라는점은...음~~완도에사는 젊은 청년들이 완도신문을 보고 많은 정보와 사업 아이템을 얻어갈수있는 그런 완도 신문이 되었으면
기사의 시작 '나는 흔들리지 않는다.~'로 저는 동기들로부터 ‘흔들리지 않는 남자’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바람에 이는 잎새처럼 쉽게 흔들리는 저는 아이러니하게도 반대되는 별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더 모순적인 것은 이 기사가 난 후로 전 쉽게 흔들리지 않게 되었다는 겁니다.새로 접하는 많은 업무로 많이 흔들리던 제가 이 기사를 신조로 삼게 되어서인지 모르겠지만, 아직도 많이 부족하고 서툶에도 초심만은 흔들리지 않게 되었습니다.그리고 과분하게도 첫 부임하고 4개월 만에 칭찬릴레이의 주인공으로 기
14년도 초 완도군청 공무원으로 입사하여 노화읍사무소에 근무하다가 만2년이 채 안되어 외청격인 어촌민속전시관에 근무하면서 실상 군청에서는 잘 알지 못하는 젊은 공무원 위치에 있었습니다.그런데 관장님 추천에 힘입어 완도신문의 새로 생긴 칭찬합시다 코너에 무려 첫번째로 등장함에 드라마틱하게 완도군청 직원분들의 주목을 받게 되었죠. 사진을 잘 찍어주신 덕분에 처음보시는 계장님들마저도 바로 알아보시고 오~ 신문에 나온 정재호주무관 이러면서 친근하게 인사해주셔서 덕분에 군청으로 오는 길이 참 즐거웠습니다.군청 뿐만이 아니라 주변 식당을 가도
정말로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만든다’가 맞나봅니다. 완도신문에 대문짝만하게 사진과 기사가 나가고 여기저기 타지에 계시는 분들에게까지 축하전화를 받으니 기사가 거짓말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친절한 진영씨가 되려고 부단히 노력하는 제가 보이더라구요.처음에는 내 업무를 추진하면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칭찬받으니 부담스럽기만 하고 내게 어울리지않는 옷을 입은 느낌이었습니다. 나는 내 업무 중 하나 처리한 것뿐인데 민원인 입장에서는 그게 아니었구나 싶으니 더욱 책임감이 생겼습니다.그렇게 최선을 다하여 도와드리면 민원인들이 고마워해주시고
장막을 걷어라나의 좁은 눈으로 이 세상을 떠보자창문을 열어라춤추는 산들바람을 한 번 또 느껴보자가벼운 풀밭위로 나를 걷게 해주세봄과 새들의 소리 듣고 싶소울고 웃고 싶소 내 마음을 만져 주오나는 행복의 나라로 갈테야행복의 나라를 부른 가수.지난해 59세에 낳은 딸 양호의 교육을 위해 한국 생활 12년을 과감히 버리고 미국 뉴욕으로 떠났던 가수 한대수(69)가 최근 완도에 그 모습을 보였다.지난 7월 9일 예술의 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어린이들을 위한 음악동화 ‘할리우드의 피터와 늑대’에 해설자로 나서 1년만에 딸 양호와 함께 한국땅을
휴거.‘들어올릴 휴(携), 이끌 휴’와 ‘들 거(擧)’가 합쳐진 이 말은 종말론을 주장하는 개신교의 한 종파에서 만들어낸 신조어다.1993년 10월의 휴거 선풍은 대단했다. 휴거가 일어난다고 하는 날짜에 텔레비전에서 생중계까지 했을 정도였는데, 일부 기독교 교단에서 이 ‘휴거’ 현상이 세상 종말의 날에 심판의 징조로 나타날 것이라고 선전하여 많은 사람들을 미혹시키고 사회적으로도 큰 물의를 일으켰으나, 후에 이 교리의 허황됨과 삿됨이 널리 알려지면서 휴거 논쟁이 가라앉았다.본지에서도 1994년 1월 16일자지면에 휴거 광란은 재현될
보건의료 취약지역의 주민들에게 보건의료를 효율적으로 제공함으로써 국민의 의료균점과 보건향상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는 농어촌 등 보건의료를 위한 특별조치법(농특법)에 따라 보건진료소는 설치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보건진료소는 대부분 1인이 책임지고 운영을 하고 있어 직원 복지 부분에서는 불편을 감내하며 근무를 하게 된다.이번 칭찬릴레이 주인공은 지역사회 어르신들의 건강수준 향상에 기여하고 있는 신지보건지소 동고보건진료소 소장 임하얀 씨다. 임 씨는 완도읍에 집이 있지만 보건진료소 2층에 숙소에서 자는 날이 많다. 아이들이 다 커서
김종식 전 군수 출마설 솔솔 그러나 김 전 군수는 불출마다최근 내년 지방선거 후보자들에 대한 출마여부가 화두다. 그중 으뜸은 군수 후보로 3선을 지낸 김종식 전 군수의 출마설이다.주변에 지인들도 필자를 만나면 김종식 전 군수의 출마여부를 자주 묻는다. 최근 측근들에게 전화를 자주하고 방문 횟수가 많아졌다면서, 출마설에 무게를 두고 질문을 던진 것이다. 유독 필자에게 김종식 전 군수에 대한 질문이 잦은 이유는 꼭 언론사대표라서가 아니다. 김 전 군수 재임 당시 완도신문과의 법적 다툼으로 인한 악연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또한, 완도
이 꽃이 피기 시작하면 벼가 고개를 숙인다. 누런 들판 사이로 간간이 보이는 쑥부쟁이는 가을의 서정성 대표한다. 이 야생화의 필두로 그다음에는 구절초가 핀다. 은행잎이 물이 들면 감국도 노랗게 핀다. 가을의 국화는 제각각 멋이 있다. 쑥부쟁이는 가을 들판을 담고 구절초는 산 빛을 담는다. 수다스럽게 핀 감국은 느린 가을 하늘을 담는다.해국은 은빛 바다를 머금는다. 쑥부쟁이는 초가을부터 늦가을까지 핀다. 그래서 가을 들꽃이라 불린다. 논두렁에서 만난 쑥부쟁이는 간소하다. 간소하기 말 나위 없는 구절초는 주로 산에서 피어 산국화라고도
미국에서 있었던 일입니다.허름한 차림의노부부가 어느날 하버드 대학 정문을 들어서며 이 대학의 총장을 만나려면 어디로 가야하는지를 물었답니다.그런데 그 수위아저씨는 이렇게 답하는것이었습니다."우리 대학의 총장님은 바쁘셔서 당신들을 만나줄 시간이 없을 것입니다"노부부의 차림을 위아래로 훑어보면서 말이죠. 즉시 노부부는 발길을 돌렸을 뿐 아니라, 하버드대학에 거액을 기부하려던 생각을 바꾸어 대학을 스스로 세우기로 맘 먹었답니다.그렇게 탄생한 대학이 스탠포드라는 명문대학입니다.실제 노부부는 자식이 없는 억만장자로 가진 재산을 의미 있게
생일도(生日島)는 드넓은 청정해역으로 아담하고 늘푸른 섬이다. 처음엔 산일도, 산윤도라 불리다가 주민들의 본성이 착하고 어질어 갓 태어난 아기와 같다 하여 날 생(生)과 날 일(日)자를 붙여 생일도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또 하나의 유래는 예로부터 험한 바다에서 조난 사고와 해적들 횡포가 심해 ‘이름을 새로 짓고 새로 태어나라’는 뜻에서 생일도라고 불렀다는 설이 있다. 한국관광공사에서 '2017년 휴가철 찾아가고 싶은 33섬'의 쉴섬으로 선정된 생일도에서 가볼만한 곳을 소개해 본다.1. [투명산‘백운산’&‘백운봉’비
어 ~ 어! 손이 떨리고 글씨가 이상하다.오랜만에 연필을 잡아서인가?새벽에 코피가 심하게 난 후, 토를 해서 구급차를 타고 병원에 실려왔다.그러다 저녁에 백혈병이라고 해서 놀랐다. 지금 내 몸 속으로 일본인의 골수가 들어가고 있다.밖에서 간호사들이 골수를 가지고 들어오는데 그 골수를 보았을 때, 그 감격과 설렘이란!내 마음은 화산이 폭팔하는 듯 벅차 올랐다.엄마랑 즉석사진을 찍었다. 일본인이 준 골수에 대해 감사편지를 쓴다. 난 비싼 등록금을 내고 사립학교에 다니는 친구들, 학원에서 과외 받는 친구들 부럽지 않다.왜냐고? 난, 병원
올 여름은 유난히 더웠습니다. 또한 가뭄으로 농어민뿐만 아니라 온 군민의 가슴을 새까맣게 태웠습니다. 모든 군민은 인디언 기우제라도 지내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그런데, 이렇게 시련을 겪게 되면 우리는 더욱 평화로운 자연을 경외하면서 그 소중함을 느낍니다. 사람들 또한 누구나 상호 유기적인 관계를 유지하면서 아름답고 살기 좋은 지역 사회를 바랍니다. 옳고 그름이 분명하고 공평한 지역 공동체를 꿈꿉니다.완도신문이 특권과 반칙에 맞서 험난한 길을 마다하지 않고 걸어온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완도신문은 편견 없는 사회, 소외된 사람들이
노화 섬 촌놈, 서울로 가출해노화도 섬 촌놈이 초등학교 6학년 당시 아버지를 따라서 목포에 갔다가 문화적 충격을 받고 그후 10대 중반에 서울로 가출을 했다.어린 마음에 얼마나 도시로 나가서 살고 싶었을까. 어린 시절을 섬에서 살아보지 않은 사람은 잘 모를 것이다. 그냥, 무조건 섬을 떠나고 싶은 그 마음을... 그렇다고 고향을 떠난 도시의 삶도 순탄치마는 않았다. 중국음식점 배달원, 새벽 신문배달원, 구두닦이, 넝마주이 등 생활비를 벌기 위해 안 해본 일이 없을 정도였다. 그러다 우연히 만난 경찰관의 도움으로 공부를 시작해 고학으
편집자 주> 고은 시인은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주세요 낙엽이 쌓이는 날 외로운 여자가 아름다워요"라고 했다.가장 아름다운 하늘이 펼쳐지는 가을날.아직은 노염이 기승을 부리는 날씨지만 군민이 추천하는 완도의 가을을 소개한다.정현종 시인이 그랬다."사람이 온다는 것은 실로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그렇다. 누군가 나의 방문객이 된다는 건 실로 어마어마한 일이다.그 사람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지금 이 순간에
편집자 주> 완도군은 예로부터 다도해의 수려한 자연경관을 자랑하고, 리아스식 해안으로 이루어진 갯벌과 게르마늄 성분이 함유된 맥반석, 초석이 깔려있는 지반층에 해조류가 숲을 이루고 있어 전국 제일의 청정함과 가장 많은 해양생물종이 서식하고 있는 대한민국 대표 생태수산도시다.하지만 현재 지구 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는 바다생태계의 변화로 이어졌고 그에 따른 기존의 어업활동에도 많은 변화가 필요하게 되었으며, 어촌을 지키는 인구도 고령화단계에서 초고령화 사회로 접어들고 있는 현실이다.이러한 현안문제를 해결하고, 완도군은 어업실태에 대한
"상황산은 상황산이여야 한다"고 밝힌 향우 S 씨.그는 "13세기 중반 고려 원묘국사 요세가 탐진강 입구의 만덕산 백련사에서 결사를 행한다. 이후 불교는 귀족 종교의 틀을 벗어나 기층민들에게 급속히 보급되어 많은 민초들이 불가에 의지하게 된다. 현세의 고난함을 내세에 의지하고자 하는 민중의 피폐한 삶이 반영되어 완도의 민초들도 불가에 심취하게 되는 시기였다."고 했다."1245년 몽장 차라대가 이끈 몽고군이 호남을 유린하고 목포까지 침입하자 위기감을 느낀 만덕산 백련결사 주도자들은 물 건너 완도 법화사로 몸을 피한다. 중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