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향을 향하는 나그네가 된 사람이 있다. 추운 골짜기를 지날 때마다 뜨거운 가슴을 파묻고 있는 그리운 사람이 있다. 그 깊이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비밀스러운 사람이 또 하나 있다. 얼음장을 깨고 눈길 위에 발자국으로 정을 온전히 쏟아놓는 사람아. 네가 가는 길마다 푸른 새싹이 돋고 눈물의 꽃을 만드는 사람아. 남루한 세월을 지나왔어도 이마에 가장 깨끗한 햇빛이 내린다. 허름한 세월이 누더기가 되어도 밤하늘에서 별빛이 내리나니 그 사람이 나에겐 가장 소중하다. 남산 제비꽃이 오던 길로 다시 온다고 한다. 소녀의 이름으로 노래를 부
완도수목원은 최근 상왕봉 일원에서 황금색 꽃망울을 터트린 복수초가 확인됐다고 26일 밝혔다. 복수초는 이른 봄 눈 속에서도 피는 꽃 중의 하나로, 미나리아재비과 여러해살이풀이다.야생화 가운데 추운 겨울에도 먼저 꽃을 피워 봄을 알리는 꽃으로 사랑을 받고 있다. 야생화 가운데 추운 겨울에도 먼저 꽃을 피워 봄을 알리는 꽃으로 사랑을 받고 있다. 지난 2020년에는 가장 빠른 1월 초에 꽃망울을 내밀었고 2010년엔 2월7일로 가장 늦게 개화했다.
땅 위에 사는 모든 운명을 사랑한다. 그래서 수천 년 전에 이름이 지어졌으리라. 하늘은 이 많은 운명을 안내하는 별을 수놓아 놓았다. 지난 시절 라디오에서 노래가 나오면 그냥 따라 하면 어느 날 나의 노래가 되듯이, 땅을 파고 약간만 들어가면 따듯한 온기가 듯이 대지를 밟고 서로의 이름을 불러 부면 그게 의미를 부여하게 한다. 바다를 날아다니는 새들도 새 생명을 잉태하는 때에는 대지를 밟는다. 티끌만큼 작은 먼지도 지상에서 출발하나니 다시 땅으로 돌아오면 씨앗 하나 움켜잡고 싹을 틔운다. 물 위에 꽃잎이 죽어서도 강으로 바다로 떠난
재를 넘어가다보면 아직도 넘어야 할 재가 남아 있다. 추운 솔바람 소리에도 지상에서는 따뜻한 삶이 있다. 아직 들리지 않는 개울물도 그 가슴속에선 따뜻한 피가 흐르고 있겠지. 이름 모를 새들도 나뭇가지에서 서로 속삭이며 입김을 불어넣고 있다. 푸른 잎들이 어디로 떠나고 싶은 걸까. 서로 얼굴을 비비며 다짐해본다. 봄이 오면 두 날개를 펴면서 고갯마루로 떠나고 싶다고 한다. 숨겨둔 마음이 그리 높지 않은 능선을 오르면서 비로소 그리움이 되나니 엷은 미소를 짓게 한다. 아직 봄 산은 멀리 있지만 이따금 부엉이 울음소리에 생각하는 사람이
몸 하나로 견디는 사람들. 노숙이 아니라 햇빛 하나만 있으면 만족하는 사람들. 들판에 흩어져 피는 꽃들에 하나하나 아름다운 이름을 지은 사람들. 봄부터 가을까지 꽃이 피고 질 때마다 그리운 사람들. 이제 한해가 지나가려고 머뭇거리는 사람들이 그리워진다. 얼마나 그리우면 죽어서도 꽃이 되는 이름들. 삶의 흔적들은 살아있을 때 정이라 말하리. 마른 나뭇가지에 추위에 떨고 있는 새들도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서로 말을 건네며 정을 나눈다. 겨울 햇빛은 가늘지만 그래도 공으로 받기에는 미안한 듯이 지난 영광의 햇빛을 그리워하면서 지나간 운
아무도 가지 않는 길을 나는 간다. 당신은 아무도 가지 않는 길을 당신 홀로 간다. 겨울 하늘 아래 떨어지는 동백꽃. 그 더운 여름을 꽃망울에 뭉쳐다가 이제야 그 열정을 편다. 하루를 꽃 피우기 위해 천년을 기다렸을 것이고 천년의 영혼을 지키기 위해 하루를 얼마나 소중하게 여겼을까. 아무도 가지 않는 길을 가야 한다 것이 당연히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이고 당신도 처음 겪는 일이겠지. 저마다 길이 없는 곳에서도 햇살은 속삭일 것이고 날마다 서천길이 달라져 낯선 길 위에서도 붉은 노을이 당신과 나를 맞이한다. 천년의 소망 속에 태어난
겨울나무는 적게 가져야 더 많은 것을 얻는다고 한다. 소나무도 상록수이지만 가을에 잎이 노랗게 되면서 떨어진다. 소나무 낙엽이 산길을 가장 부드럽게 만든다. 그 산길을 가고 있으면 마음에까지 닿는다. 산길을 홀로 가고 있는 뒷모습마저 향기롭게 보인다. 나무는 욕심이 없다. 무언가를 소유하려 하지 않는다. 때가 되면 땅으로 모든 것을 내려놓는다. 운명적인 가난보다 더 선태 적인 가난이 마음과 정신이 얼마나 맑아지는지 모른다. 겨울나무는 눈과 만남이 아름답다. 겨울나무로 상징될 만큼 상고대는 자연이 준 예술이다. 가지에 모여 있는 모든
사랑의 열매에는 가시가 있다. 12월에 빨간 열매를 간직하기 위해 그 독한 가시가 돋았나 보다. 파라칸타, 배풍등, 명감나무, 찔레꽃나무, 산수유 등은 사랑의 열매를 상징한다. 나무에도 뜨거운 피가 흐른다. 우리 눈에 보이질 않지만 그 뜨거운 사랑의 기운이 하루하루를 지탱하게 만드는지도 모른다. 어릴 때부터 나는 호랑나무가시를 보아왔다. 그땐 빨간 열매가 달렸는지도 몰랐다. 단지 일 년 내내 사철나무로서 잎에 가시가 달렸다는 기억뿐이다. 산야에서 가끔 보이는 호랑나무가시는 강인한 나무다. 서양에서는 예수의 가시관에 생명이 다시 태어
가을에 잎이 빨갛게 익었다가 겨울에 더 붉어진 얼굴. 봄의 기운으로 싹을 틔우고 여름에 뜨거운 열정으로 꽃을 피우고 가을에 비로소 열정을 토해낸다. 겨울엔 마음의 온도를 올리기 위해 빨간 열매를 달아놓는다. 나무는 매일 쉬지 않고 자기를 변화시킨다. 타인을 위해 향기를 내어주고 아름다운 색깔로 자기의 본모습을 보여준다. 남천나무는 신사임당의 화폭에서 많이 알려진 나무다. 원산지가 중국이라고 하는데 16세기 전에 들어온 것으로 여겨진다. 사철나무로 사계절 다른 모습을 드러내 정원수로써 많이 심는다. 뿌리와 줄기, 잎은 해열제로 효험이
나무는 제 자리에서 평생 누군가를 간절히 기다린다. 그 기다림이 커서 나무가 됐나 보다. 나무와 나무는 사이가 잘 보이질 않지만 분명 손을 잡고 있다. 누구를 기다리는 동안 서로 외롭지 않기 위해서다. 세포는 늙어 하나둘씩 사라지지만, 누군가를 그리워한 마음의 무게는 세월속에서 더 늘어만 간다. 나무는 늘 그 자리에서 서 있기를 원한다. 계절 따라 별들이 찾아오는 데에 어려움이 없기를 바라면서다. 옛사람들은 토담집을 짓더라도 자연을 찾아가서 지었다. 한그루 소나무 옆에 집 하나는 그 공간을 무한한 상상력을 낳게 한다. 늦가을 나무는
나의 그대 사랑하기에 모든 것들이 아름답게 보인다. 그 많은 꽃은 어디로 가고 없는데도 사랑의 열매들이 나의 가슴을 데운다. 아무 때나 와도 사랑의 씨앗은 기억을 되살리고 있고 산 기습에 아무리 숨겨 놓아도 너의 사랑의 온도를 느낌으로 알았네. 이맘때면 어김없이 찾아와 사랑의 이름표를 달고 가을 하늘을 노래하는 너. 자기의 마음의 깊이를 주장하느니 세상은 더 따뜻해지고 너그러워졌다네. 생각은 억지로 길을 만들지만 마음은 늘 자유롭게 세상을 보라고 청미래덩굴은 그렇게 아름답게 빨간 열매를 달아놓았다네. 제 가는 데로 꾸불꾸불 가을 길
그 많은 꽃은 어디로 갔나. 그 짧던 계절 속에서도 내가 나를 꽃피우던 시절은 어디로 갔나. 그 많던 소녀들은 어디로 갔나. 수줍게 그냥 그 자리에 있어도 꽃이 되었던 그 세월은 어디로 갔나. 이른 봄에 산언덕에 불현듯 나타난 생각나무 꽃. 그 소녀가 노란 꽃이 되었기에 나는 그 얼굴을 기억한다. 오랜 세월도 꽃이 된 소녀는 어디로 갔을까. 봄여름 지나 가을꽃들은 어디로 갔나. 모든 사랑의 눈물들을 훔친 계절의 예언들은 아직도 멈추지 않고 있는데 한참 피었던 그 꽃들은 어디로 갔나. 억새꽃 바람에 흔들리는 몸짓. 아직 꽃들은 아쉬운
가을 국화꽃 중에 제일 작은 꽃은 감국이다. 연보랏빛 쑥부쟁이와 다르게 노란 은행잎처럼 산언덕에서 많이 핀다. 꽃은 작지만 여러 송이 모여 피어있기에 멀리서도 잘 보인다. 해 질 녘에 남쪽 햇볕과 마주할 땐 노란 조명으로 물들인 것처럼 그 풍경 또한 아름답다. 가을의 들국화는 모름지기 감국이다. 산에는 산국, 바다는 해국, 들에는 감국이다. 자연에서 자란 꽃들은 소소한 맛이 있다. 꽃잎을 자세히 보면 제각각 다르다. 바람이 어느 때 온들 잠시 머물다 갈 수 있도록 마음의 틈을 내어 준다. 가을 햇볕이 내려앉으면 머리를 깨끗이 감고
지난 여름 동안 안으로만 쥐고 있었다. 움켜잡은 주먹 안에서는 생명이 잉태하였고 결연한 의지로 그 생명을 키워 냈다. 잎사귀는 온갖 태양 빛을 받아 엽록체를 만들고 광합성 작용을 하여 영양분을 만든다. 콩 뿌리혹박테리아는 흙이나 공기 중에 질소를 모아 콩에 주면 이걸로 단백질을 만든다. 무기 화학에서 유기 화학으로 가는 여정이 절묘하게 손을 잡고 있다. 자연스럽게 화학적 결합이 일어나 생명이 잉태되고 영양분으로 성장한다. 시월 한가운데선 꽉 쥐고 있는 생명을 펴야 한다. 콩깍지가 열리는 순간 가을의 소리가 시작된다. 으름덩굴 열매가
가을 산에서 불현듯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 시월 어느 날 마른 숲에서 다소곳이 피어난 하얀 그리움은 어느 산길이 되었나 보다. 사람의 입에서 고요한 새소리가 되고, 맑은 눈망울은 그림이 되고 싶은 계절은 내 마음의 풍경을 만든다. 가을의 뜨락에서 점점 맑아가는 홍시를 보고 있으면 그 마음이 한곳 에서 맑은 하늘을 내려온다. 가을 한가운데에서 보이는 것마다 음악이 되고 시의 언어가 된다. 계절은 우리에겐 늘 깨어 있으라 한다. 무기력하고 진부한 삶의 패턴에서 리드미컬하게 움직이라고 지시한다. 가을의 움직임은 가장 낮게 그리고 겸허하게
가을의 꽃은 모름지기 쑥부쟁이다. 특히 산마루에서 그가 넘어가는 모습은 가을의 눈물처럼 깊어 보인다. 연보랏빛 치맛자락에 가을바람 지나는 흔적은 영원히 기억될 만큼 아름답다. 가을 냄새 음미하려면 조용한 개으름이 좀 필요하다. 내가 필요한 만큼 한가로움은 내 마음의 여백을 만들어가는 것. 그 속에 계절에 따라 꽃이 피어있음이여. 지금 내 마음의 여백에 쑥부쟁이가 피었고, 수없이 흔들림 속에도 피어난 산마루의 꽃들이 내 마음을 이끈다. 가을의 서막을 알리는 것도 쑥부쟁이다. 가을의 끝자락을 쑥부쟁이가 지키고 있다. 바구니에 가득 채워
바람 한 점에도 여백을 만드는 것들은 한결같이 꽃이 된다. 서늘한 날씨가 배춧잎을 넓적하게 키워내고 있다. 9월이 가기 전, 시월의 그리움을 무수히 피운 마음을 메밀꽃은 알 것이다. 그리움은 멀리 있지 않다. 가까이서 배추 잎을 보고 하루가 다르게 사랑을 키워낼 수 있듯이. 구월의 여울은 한시름 내려놓고 다시 떠나가라고 반짝이는 물살, 한순간 만큼은 행복한 눈웃음으로 핀다. 길 따라 바람 따라 한꺼번에 피워도 모자라 다시 핀 미소. 지긋이 눈을 감고 고개를 들면 구월은 아름답게 흘러간다. 간밤에 들리던 구월의 마지막 빗소리. 그 빗
초가을의 풍경은 계절 중에 가장 섬세한 얼굴이다. 중후한 첼로 음률 하나만으로 여러 마음으로 갈라놓는다. 그것은 내 마음 속에도 이미 가을이 들어섰다는 뜻이다. 무엇보다 가을의 얼굴은 겸손이다. 여름에 독을 품고 원수를 만들었던 얼굴은 이제 겸허한 길로 들어선다. 미움도 지나고 나면 그것이 나의 인생에서 필요한 것이라는 걸 가을의 얼굴을 보면서 알게 된다. 사랑이란 얼굴도 멀리서 바라볼 때만 아름답게 보일 수 있겠지만 매일 살을 비비고 산다면 어려움이 한두 가지 아닐 것이다. 그런데 이 계절은 또다시 오지는 않을 것인데, 너무 즉흥
초가을에는 꽃이 귀하다. 아직 가을의 서정을 주기엔 너무 아까운 모양이다. 그래도 관심을 두고 주위를 보면 우리 야생화들이 많이 있다. 담벼락에서, 나무위에서 의지하며 덩굴성 사위질빵은 향기가 깨끗하면서 멀리 풍긴다. 꽃은 작지만 수많은 꽃송이가 내품는 향기는 때 아닌 가을장마에도 마음의 곳곳마다 뽀송뽀송하게 만들어준다. 자기만의 뜰을 만들어 놓고 꽃을 기르는 마음이야말로 그보다 좋은 보약을 없을성싶다. 그리고 그리워하는 마음도 더욱 깊고 높게 만들 수 있다. 내 앞에 돌 한 덩이도 그리운 마음만 있으면 아름다운 글귀가 나오듯이 말
솔밭에 솔잎이 쌓인다. 늦가을에 솔잎 낙엽을 보면 얼마나 포근한지 모른다. 가느다란 산길로 가는 행인의 뒷모습도 솔 냄새가 그윽한 곳에선 더욱 운치가 있다. 소나무 낙엽이 쌓인 산길을 걸으면 마음이 그지 없이 평온하다. 직감으로 사물에 관한 관찰력은 그 사람의 마음의 영역일 것이다. 여기에서 에너지를 서로 주고받아 자기만의 삶의 방식을 찾는다. 솔밭 길을 걸으며 자연이 주는 느낌을 받는다. 물욕을 버리고 자족하는 상태는 극히 자연스럽고 본래의 성품이다. 우리 어머니들이 텃밭을 경영하는 방법은 자연의 법칙에 따랐다. 가족과 이웃을 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