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찾아오는 손님은 봄이다. 무엇인가 새롭고 설렘이다. 어린 날에 봄 소풍이 잡히는 날을 생각하며 잠을 못 이룬 적이 있었다. 봄은 새롭게 채워지는 기쁨이다. 살아있는 자체가 행복이다. 그런데 새롭게 생명의 싹을 보니 낳고 자란 기쁨의 미를 모두 감득할 수 있다. 가을은 공간의 미다. 채워지는 것보다 비어있는 공간이 아름답다. 그 공간에 이따금 가을의 열매가 정점을 이룬다. 미적분 함수에서 미분계수를 순간변화율이라 한다. 최대 극한값으로 가는 과정이 최댓값이다. 그 직선의 기울기는 우리 인생에서 가지는 각각의 개성이다. 이것을
『加里浦上金等造』″가리포사람 김씨 등이 만들어서 바칩니다″.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끈 가공할 위력을 가진 당시의 최신 화포 대장군전에 음각 된 글씨이다. 임진왜란이 발발한 1592년부터 전쟁이 끝난 1598년 11월까지 조명연합수군과 왜군과의 치열한 전투가 남해안의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이때 조명연합군에게 비장의 화기(火器)가 있었으니 그것은 천지를 진동하며 적진으로 쏘아올려진 대장군전(大將軍箭)이었다. 완도의 진산 상왕봉(象王峰)과 백운봉(白雲峰)을 온통 뒤덮고 있는 사계절 푸른 나무가 있다. 누란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호국(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조선의 진경산수화를 부르는 말이 동국진경이다. 우리만의 사상과 예술세계를 정립했다는 뜻이다. 중국의 사상과 예술세계를 그대로 받아들였던 이전 것을 벗어버리고 우리의 사상과 예술세계로 발전시켜 새롭게 하자는 것인데, 그 중 신지도의 원교 이광사가 완성한 것이 바로 우리의 글씨 동국진체이다. 이전에 없던 것을 원교는 우리만의 사상을 도입해 새롭게 완성했다. 그뿐만 아니라 주자 성리학의 뿌리가 깊었던 조선 사회에서 원교 이광사는 양명학을 받아들였고, 그의 아들 영익에 의해 그것을 완성했다. 사상가 원교와 그의 아들이
처음과 나중 그리고 처음과 처음 사이는 꼭 걸쳐야 하는 시간이다. 생명이 시작하기 이전과 이제 생명이 시작하여 그 여정을 걸치는 동안 우리는 얼마나 가지려고 했는가. 고민이 깊었을 때 시간이 그 답을 가지고 있다. 이제 현재의 순간에서 수없이 시간을 나눈다. 그만큼 하루가 중요하다는 뜻이다. 하루에 먹을 식량이 정해져 있고 하루를 살아갈 시간과 공간도 정해져 있다. 이 한계점에서 조용히 받아들일 일이 있는데 생명이다. 이제 한해살이풀들도 그 짧은 기간에 맡은바 소임을 다했다. 들판에 추수가 한창이다. 그 시절 푸르던 날을 뒤로 하고
주사위는 던져졌다. 해양치유.민선 6기부터 8기까지 완도군정을 한마디로 압축시킨다면 해양치유다. 지난 10년 동안 완도사람들이 가장 많이 들었던 말 또한 실체도 형체도 없었던 해양치유. 되네 안되네, 언제 하네 못하네, 숱한 곡절 속에서 마침내 다음 달 그랜드오픈을 앞둔 해양치유센터. 공무원들에 이어 사회단체와 일반 군민의 시범운영이 이루어지고 있는 가운데, 테라피를 받고 나온 주민들은 하나같이 "개운하네" 소리가 절로 나왔고, 몇몇 주민들은 입소문을 듣고 와 “왜 우리는 뺐느냐?”며 소소한 항의까지 있었단다. 주무부서장인 안환옥
완도에서 아름답기로 두 번째 가라면 서러울 마을이 있다.보길도의 남쪽에 자리한 아기장수 설화로 유명한 보길면 예송마을이다.옛날 예송리 마을 앞의 진매잭이라는 섬에 부부가 살고 있었다. 하루는 부인이 바닷가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하늘에서 푸른 구슬이 떨어지자 그 구슬을 주어 집에 있는 애기에게 줄려고 입에 물고 집에를 가는데 발을 헛디뎌 그만 그 구슬을 삼켜버렸다. 이후 부인의 몸에 이상을 느끼고 생명이 잉태되어 아기가 태어났다.걷지도 못하는 그 아기는 부모가 바닷가로 일을 나가면 아무도 모르게 혼자서 집안일을 다 해놓았다.걷지도 못
조석으로 밀려드는 안개가 바다 위에 떠 있는 섬과 섬을 한 폭 수묵화로 물들인다. 잔잔한 바다가 그려낸 회색빛 세상, 점점이 떠 있는 어선 위로 날아든 물새의 날갯짓에서 잠시나마 느껴보는 평화로움이다. 이 가을, 완도의 바다는 자연이 부려놓은 천연의 수묵화로 다시 깨어난다. 전남 국제수묵비엔날레가 막바지에 이르렀다. 9월 1일부 터 10월 31일까지 진도와 목포에서 열렸다. 코로나로 인한 지난 특별전을 빼면 올해로 3회째. 비엔날레는 2년마다 열리는 국제적 미술전람회이다. 국내에는 광주비엔날레, 부산비엔날레, 대구비엔날레 등이 있다
입 밖으로 무게 없는 소리들이 날개를 달고 나오자, 가슴을 경작하는 손길이 닿는 곳마다 폭포의 중력으로 쏟아져 내려 만인의 어깨와 머리 위에서 춤추고 노닌다.가늘고 뾰족한 소리의 음표 하나 하나가 살갗을 뚫고 들어와 핏줄기를 따라 심장으로 돌진해 압도적인 힘으로 멈춰 섰을 때, 내 몸을 뚫고 들어오는 예술, 바로 우리의 소리다.그 소리에 익사 당하려고 할 때, 폭풍같은 음율은 사랑의 번개와 충돌이라도 한듯 맹열한 폭포의 끊임없는 소리 가운데 서 있고 그 소리의 중심에서 흠뻑 젖어 버린다. 그렇게 당신의 몸이 젖지 않는다면, 귀를 막
가을 텃밭에는 푸른 하늘이 있다. 배춧잎 보다 더 큰 세상이 앉아 있다. 목성에서 지구를 바라보면 저곳에 있는 푸른 세상이 경이롭다. 하나의 초록 별은 그 많은 세상을 담고 있다. 내 마음의 경영은 바로 텃밭이다. 배추, 무, 마늘, 파, 시금치를 보면 어느새 눈이 맑아진다. 해가 짧고 기온이 내려가면 초록 색깔은 점점 진해진다. 우리 마음의 빛깔도 그렇다. 옷깃을 여민 억새는 이 계절 가장 절제된 모습이다. 가을을 노래 하려면 이런 모습으로 들어와야 한다. 가을 텃밭은 지구의 푸른 별, 그 별 하나 머리에 이고 우주 여행을 떠난다
완도를 찾는 관광객이라면 누구나 관심을 보이며 발길을 잡는 섬이 있다.완도항 앞 바다에 수려한 경관을 자랑하며 그림처럼 떠 있는 섬 주도이다.우리는 주도를 바라보면서 저 노목들이 어느 날 갑자기 죽거나 쓰러진다면 어린 싹이 언제 자라서 그 자리를 매울까 생각을 해보지 않을 수 없다. 그래도 그 큰 나무는 자기가 아니면 안 된다고 한다. 그대로 두어도 되는가 생각해 봄직한 일은 아닐까? 자랑스러운 주도 앞에 서있던 주도의 설명문이 요즘 보이지 않는데 왜일까?예로부터 완도사람들은 이곳이 저울 추 처럼 생겼다하여 추섬(錘섬)이라 부르며
충무공 이순신의 표준 영정이 논란거리다. 고금도 충무사의 영정도 마찬가지다. 우리에게 친숙한 이순신의 모습은 1953년 월전 장우성 화백이 그렸다. 1973년 국가 표준 영정으로 지정했고, 충남 아산 현충사에 소장됐다. 기록상 가장 오래된 것은 심전 안중식이 1918년 그린 것인데, 현재 간송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다. 두 그림은 모두 작가의 상상화다.그동안 100원짜리 동전속의 이순신이 논란거리였다. 불패의 장수 모습이 선비에 가깝기 때문이다. 이순신의 평가를 그의 친구 서애 유성룡은 ‘단아하고 근엄한 선비와 같았다’고 징비록에 기록
완도신문을 돋보이게 하는 텍스트를 꼽으라 한다면, 각 필진들의 글을 비롯해 감성적인 이들에게 잘 읽히는 신복남 기자의 야생화 이야기, 새로운 완도의 이야기를 전하는 정지승 문화예술활동가의 글이 좋아 보이는데, 원픽(하나만 고른다면)은 유영인 원장의 글 같다.권력자를 향한 쓰디 쓴 글은 그렇게 어렵지 않다. 사물의 본질과 핵심, 객관적인 면을 본 후, 언론적 정의를 발휘하면 되니까. 어려운 것은 현장을 누비는 것. 한 가지 주제의식을 갖고 십 년 이상 깊이 있게 연구하며 현장을 누비는 전문기자. 그런 이들이 데스크보다도 언론계의 전설
스스로 그리움에 젖는다. 옆에 있어도 그립게 보고 싶다. 많은 사람 속에서 사람이 사무치게 그립다. 가을 하늘은 높고 푸른 데에는 그리움을 많이 채우라는 뜻도 있을 거다. 이제 오후 가을 햇살이 닿는 곳마다 그 느낌이 다르다. 10월에 햇살은 은유의 색깔이 있다. 그리움으로 칠해진 수채화가 날이 갈수록 다르다. 10월의 꽃 중에 제1막은 쑥부쟁이, 취나물 꽃, 산국화, 강활, 억새꽃이다. 이렇게 한데 모여 피기가 쉬운 일은 아니다. 모두가 생명이 짧기 때문에 서로 어울려서 피는지도 모른다. 꽃이 질 때보다 활짝 필 때가 더 서럽게
‘진한국마한사’. 지금 듣기에도 생소한 한국고대사인 마한의 역사를 심도 있게 연구한 소남 김영현 선생은 불목리의 ‘넌지’라는 산막에서 반평생 제자를 가르치고 집필에 몰두했다. 1961년 그의 나이 81세, 그런데도 그의 연구열은 활화산처럼 불타올라 여느 젊은이 못지않은 노익장의 기개를 펼쳤다. 그가 마지막 심혈을 기울여 집필한 한국고대사를 하루빨리 출판해야함을 제자에게 알리고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절박한 심정으로 애제자에게 논어를 비롯해 ‘진한국마한사’를 익히게 했다.책을 출간하기 위한 작업이 순조롭지는 않았다. 모든 자료는 한자
완도에는 인물이 많다. 응송 박영희와 소남 김영현은 완도가 배출한 인물 중 교육자요, 독립운동가로서의 그 행적이 뚜렷하다. 두 인물의 특징은 완도향교의 유림이던 부친으로부터 학문을 배워 조국과 완도군을 위해 헌신한 것.향교는 공자와 여러 성현께 제를 올리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나라에서 세운 교육기관이다. 완도향교는 완도 설군 이듬해인 1897년 향토 유사 침천 김광선이 건립을 추진하여 어렵게 지어졌다. 건물 배치는 전학후묘 형식을 따르고, 3층 계단식으로 맨 아래에는 학생들이 모여 공부하는 강당인 명륜당, 학생의 기숙사인
아직 일흔두살 나이가 믿기지 않은 날씬한 몸매를 자랑하는 백행덕 해녀를 만났다.″아니 뒷모습만 보면 지금도 총각들이 따라 가것어요, 아가씨때는 소안도 총각들이 여러 명 죽었을 것 같은디요.?″ ″오매! 참말로 그란가?.″ 소안면 진산리가 고향인 백 해녀는 1남 4녀 중 첫째딸로 태어났다. 완도읍 해녀 6인방 중 가장 키가 크고 항상 미소를 머금고 사는 멋스러운 해녀이다. 백 해녀는 다소 나이가 늦은 스물 두 살에 제주해녀를 통해 물질을 본격적으로 배웠다고 한다″내가 애릴 때부터 우리집 아랫방에 제주에서 원정물질 온 해녀들이 살고 있
무소유의 법정스님이 살아 생전, 천억원을 받은 적이 있었다. 그 천억원이란 돈은 대원각이라는 큰 요정을 운영했던 김영한에게서 받게 된 것이었는데, 김영한이 누군가 하면. 시인들이 가장 사랑한 시인 백석을 한 남자로, 그녀는 북에 있는 정인을 한평생 그리워했다. 영한은 싯가 천억원에 해당하는 대원각을 무소유의 가치를 실현하던 법정스님에게 "받아라"했고 법정스님은 "못 받는다". 이런 실갱이를 십년동안이나 하다가 결국 법정스님이 받아 송광사의 재산으로 등록한 후 길상사로 변모됐다.대원각을 넘기고 얼마 후, 기자가 영한에게 묻기를 "천억
당신이 있음으로 해서 누군가가 행복함을 느낀다. 간단한 사물도 서로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야말로 얼마나 소중한가를 명약해진다. 우리는 시간 속에서 항상 기댈 수밖에 없다. 망망대해서 아주 작은 배를 타고 항해하고 있다. 운명은 시간이란 좌표에 놓여있다. 시냇가에 작은 돌멩이도 시간의 흐름으로 밋밋하게 다듬어진다. 우리는 얼마나 살아봐야 시간의 흔적을 알 수 있을까. 시간의 예술은 음악이다. 시간의 간격이 섬세한 음률을 만든다. 이 속에 눈물이 있으므로 삶을 이야기할 수 있다. 서로 다른 음이 모여 하나의 곡이 되듯이
평일도를 눈으로 스캔하며 차를 타고 돌아본다. 금일도를 간다며 나섰던 것인데, 섬에 와서보니 이곳은 금일도가 아니다. 약산 당목항에서 뱃길로 20여 분 지나 당도한 섬은 금일읍, 금일도가 아닌 평일도다.익히 들었던 소랑막걸리 맛이 몹시도 궁금했던 터라 명사십리해변을 지나고서부터 유독 소랑대교에 눈길이 갔다. 소랑대교는 아침 해를 바다가 품고 있는 것을 형상화해 디자인됐다. ‘물결이 잔잔하다’는 의미를 붙인 소랑도의 다른 뜻은 소라의 이 지역 방언이라고. 바다를 보고 있으니 ‘소랑소랑’ 물결이 잔잔하다. 소랑도 이름에 딱 어울리는 날
교수님이 말씀하셨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말은 참 잔인한 말이라고. 어리더라도 아프지 않아도 되고, 중년도 아플 수 있는데 이 한 문장으로 많은 사람들을 뭉개버린다며 말이다. 맞는 말이다. 아프지 않아도 되는데, 아파도 되는데 왜 ‘청춘’이라는 말로 모두를 괴롭히는지. 어렸을 때는 빨리 나이 들고 싶었다. 어른들만이 할 수 있는 것을 누리고 싶었고, 학생이 해야 하는 일들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성인이 되니 다시 어려지고 싶었다. 어렸을 때는 짊어지지 않아도 되는 책임감을 버리고 싶었고 그때만 누릴 수 있는 것들을 되찾고 싶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