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까맣게 타버린 논두렁에 파란 새싹들이 올라오고 있다. 삐비꽃 새싹과민들레, 애기수영이 지나가는 불길에서도 용감하게 살아남는다. 대신에 다른 풀들이 없어 자유스럽기는 하겠다. 옛날 같으면 논두렁에 이른 봄에 병충해를 없애기 위해서 불을 많이 질렀다. 마른 대막가지에 불을 붙여 논두렁마다 재미 삼아 불을 질리고 다닌 적이 생생하다.그때 애기수영이 뜨거워서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 보리가 바람에 한참 파도를 탈 때 애기수영은 부드러운 꽃대를 올린다. 학교에 갔다 돌아올 땐 마음에 여유가 있어 이것저것 많이 보고 다녔는데 그때 길가에 가깝
작은 산에 조그마한 물만 있으면 꽃이 된 사람이 있다. 가파른 산언덕에 가느다란 햇빛과 잠깐 머무는 바람에 꽃향기가 되는 사람이 있다.작은 물기에 소리 없는 봄비에도 풀잎에 눈물이 흠뻑 적혀 있는 그리운 사람이 있다. 봄꽃 중에 귀엽고 앙증스럽게 햇볕이 잘 드는 산길에서 납작한 잎 사이로 길게 꽃대를 올리며 약간 다홍색을 띠며 핀다. 봄 산길에서 명랑하게 길을 안내하는 솜나물 꽃은 자세히 들여다봐야 보이는 꽃이다.잎에 솜털이 많아서 바람을 만질 수 있고 햇볕을 가슴 안팎에 차곡차곡 쌓여놓는다. 솜나물이 세상에 닿길 간절히 바란다.
유별나게 꽃을 좋아하는 이는 눈물이 많다. 눈물이 많다고 슬픈 사연이 있다고 말할 수 없지만 슬픔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 봄을 유별나게 타는 사람들이 눈물이 많다. 그래서 이 사람들이 보는 봄볕과 봄비가 눈물겹게 아름다워지는지도 모른다. 노랗게 봄을 전할 처음 봄꽃은 양지꽃이다. 그 다음은 낙엽사이를 뚫고 나오는 노란붓꽃, 까맣게 타버린 논두렁에서 노랗게 핀 민들레, 아지랑이 사이에서 핀 개나리가 봄날을 영원히 기억하게 만든다. 16살 때 노란 난방을 즐겨 입던 추억도 노란 개나리가 활짝 피었던 봄날이다.봄볕이 늘어진 가지에서 샛노
꽃다지 풀씨 같은 시간이 모여 사는 맑은 고향이 있다. 난생처음 본 꽃다지 풀꽃 같은 가난한 마음으로 사는 고향이 있다. 바삐 새벽길 떠난 찬바람 속에서도 연분홍 같은 사랑이 있으니 그곳이 나의 고향이다.냉이꽃, 꽃다지꽃 잇는 고향으로 가자. 아침나절에 꽃이 핀다. 저녁나절 꽃이 지는 마음이 깊어진다. 이곳이 또한 나의 고향이라. 참꽃마리와 냉이꽃 그 사이에서 꽃다지꽃이 무리를 지어 낮게 핀다. 꽃다지꽃은 아주 작은 키의 꽃으로 피는데 3~4월 중순쯤에는 냉이꽃보다 작지만 꽃대가 바람에 몸을 실을 정도로 올라와 있다. 봄의 마음을
꽃이 피는 소리 봄볕에서 온다. 봄볕에서 피는 연보랏빛 마음이 각시붓꽃 피는 그리운 산길이 된다. 맑고 깨끗한 노래는 봄꽃에서 나오고 밝고 청량한 향기는 개울로 흘러간다. 기다리는 임보다 먼저 와 있는 봄.봄 한가운데에 한참이나 잊을세라 연한 꽃잎에서 들리는 향기에 오늘 살아 있는 것만으로 내가 나를 보고 웃는다. 봄볕이 통과해야 투명한 연보랏빛 마음이 되고 봄 하늘이 오롯이 앉아야만 그리운 꽃이 되는 각시붓꽃이다. 각시붓꽃은 기다린 만큼 꽃이 되고 긴 산길로 오는 간절한 그리움만큼 수줍은 얼굴을 볼 수 있는 꽃이다.붓꽃이라는 이름
연초록 햇살에 붉어진 철쭉이 머무는 산빛도 아직 산중이다. 개울물 쉼 없이 흘러 마을로 가는 첫사랑도 아직 산중에 있다.간밤에 비 내리고 바람이 불어와도 홀로 서있을지언정 천남성은 아직 산중에서 슬픈 사람들의 체온을 데우는 저 새벽별이 초록이 되어가고 있다. 자연과 인간, 생과 사 그 간극에다 쓰디쓴 인생사를 펼쳐 놓고 나뭇가지 사이에 맑은 바람이 아름답다고 말하는 순간 꽃은 지고 연한 초록이 돋아나는 경계에서 슬픔이 문을 열고 있다.슬픔의 응어리가 터져야 눈물이 되고 마음속에 독을 풀어내야 비로소 산중에 맑은 빛이 들어온다. 산중
목련꽃 옆에 웃음 지는 그리움이 있기에 산등성에서 넘어오는 진달래꽃 무척 보고 싶다. 봄볕에 앉은 양지꽃 위에 웃음 짓는 그리움이 있기에 파란 하늘 위에 빗살현호색이 무척 보고 싶다. 남쪽 바다 끝에서 까닭 모를 그리움이 노을에 물들면 붉게 떨어진 동백꽃이 밤새워 노을이 지지 않는다. 돌단풍, 제비꽃, 얼레지, 수선화와 함께 빗살현호색이 봄이 화창하게 만개한다. 얼레지 꽃은 뿌리가 깊게 둔다.마찬가지로 빗살현호색도 뿌리가 깊다. 꽃피는 시기가 얼레지와 같고 꽃 색깔도 비슷하다. 보라색을 띠지만 하늘색과 잘 어울린다. 큰 대로를 떠나
애기나리 넘어 산길이 보이네. 산새 소리 너머 고운 봄볕을 담는 봄 산이 왔네. 봄 이슬에 고개 숙인 애기나리꽃 옆에서 가장 깨끗한 얼굴로 이제 연잎에 봄비가 되어도 좋네. 봄을 가득 채운 들판에서 자운영 꽃을 보면 시계 풀 푸른 눈망울에서 봄 노래를 힘차게 부르고 싶어진다.산에는 애기나리의 새싹을 돋는 그런 부드러운 산길을 걷다가 물푸레나무 아래 연못에서 풀 냄새 나는 하늘을 보고 싶다. 아직은 봄 강물은 노래하지 않으나 곧 얼음장 밑에서 올라오는 버들개지에서 따뜻한 마음이 피어오르겠지. 지금은 큰 개불알꽃과 광대나물 그리고 냉이
박주가리 풀꽃 아이들이 푸른 하늘 여울목에서 속삭인다. 별 따라 물 따라 그들이 떠난 그 자리에선 슬픈 사연도 따뜻한 추억으로 담았다. 초록의 신발을 신고 봄여름 가을을 걸어온 삶도 마른 박에서는 경건한 마음만 담아놓았다. 박주가리 씨앗들이 떠나버린 그곳에선 시린 달빛이 와서 따뜻한 시를 쓰고 있다. 여름에 연보라 작은 꿈을 꾸었다가 그 꿈이 실현되는 날이 아주 작은 박이 벌어지는 날이다.그때 하늘이 내려오고 바람 한 점 없는 고요한 날에 그대들의 눈물 꽃이 다시 피어나는 찬란한 생명이다. 억척스럽게 자라서 흔들리는 비바람에도 꽃이
식물들은 시절이 안 좋을 때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생명이 위태로우니 자식을 빨리 번창한다. 반대로 적정한 온도와 물이 성할 땐 태양열을 받아 세포의 분열과 성장으로 몸짓을 키운다. 겨울 동안 마음의 씨앗을 깊이 묻어 두었다가 때가 되면 싹을 틔운다. 고난의 계절을 겪지 않고 핀 꽃들은 결코 꽃이라고 할 수 없다.조금만 둘러봐도 우리 야생화가 그렇다. 낙엽이 수북이 쌓인 계곡의 양지바른 곳에는 겨울을 지내고도 푸른빛을 가진 잎사귀를 바닥에 깔고 연보라색 꽃망울을 짧게 내밀고 꽃을 피우는 처녀치마. 잎이 땅에 방석처럼 넓게 퍼져
봄을 제일 먼저 알리는 꽃은 광대나물인데 겨울에도 양지쪽에서 한두 송이 피어있다. 3월쯤엔 햇볕이 따뜻하게 찾아오면 방긋이 웃는 양지꽃은 산에도 들에도 어느 곳에서 쉽게 보인다. 그다음 구슬붕이가 피는데 이 꽃도 햇빛이 있는 곳에 보이는 꽃이다. 산길을 가다가 구슬방울처럼 아주 귀여운 구슬붕이 꽃을 보았는데 돌아오는 길에 아무리 찾아봐도 볼 수가 없었다. 야생화를 처음 관심 갖는 중이라 구름이 끼거나 해가 지면 꽃잎을 닫는 것을 몰랐다. 더구나 아주 작은 꽃은 잎을 알지 않고서는 찾을 수가 없다.작은 야생화를 알아가는 방법은 꽃을
죽음의 끝에서는 아무 것도 필요 없다. 단 아쉬운 것은 진실로 사랑하지 않았다는 데에 있다. 좀 더 베풀어야 할 때를 놓치고 좀 더 정열을 쏟아야 할 사람에 기회를 잃었다. 지나고 나면 모든 것이 필요했다. 쓰디쓴 독도 인생에서 필요했던 모양이다. 단 하나의 사랑을 위해 물이 되고 빛이 되고 가장 깨끗한 공기가 된다. 사는 방식은 달라도 그 내용은 식물과 다를 바 없다. 두려움 없이 가장 오래 사는 법은 매 순간 진실로 마음 다해 열정적으로 사는 것이다.복수초가 피는 곳은 눈이 빨리 녹는다. 꽃을 피우기 위해선 에너지가 필요하다.
제법 많은 봄비에 땅이 틈새가 생기고 새싹들이 나올 길이 열린다. 선홍빛 가슴에서도 하나의 꽃이 되기 위해서 진동하기 시작해야 한다. 이제 봄노래를 담는 바구니만 준비하면 된다.첫사랑 같은 노루귀를 만난 지 몇 해 됐다. 지난날 삶의 흔적을 안고 어느 산길에서 부딪침과 직감으로 가슴을 흔들던 첫봄 같은 노루귀 꽃. 아마 천명 중에 구백아흔아홉 인연이 지나가고 마지막 천 번째 극적인 만남이다.지난날엔 한번은 나무와 나무 사이, 길과 길에서 만나 바람의 흠결로 스쳐 지나갔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가 알아보지 못한 인연들이 무익하다고 말
빈 들녘에서도 아직은 그리움이 있어 견딜 만하다. 어느 날 갑자기 내 인생의 여정이 빨라질 때까지 낮은 꽃들과 아득한 별들이 번갈아 가면서 저만큼만 시린 눈물을 만들어 줄 것이다. 깊어가는 겨울밤에 수많은 별을 품은 여린 가슴이 있다. 낮에는 아스라이 햇빛이 스치면 꽃을 피우고 밤에는 생각하는 임이 있어 별빛으로 온밤이 차 있다.여름에 햇빛의 양이 많다 해서 모든 식물이 좋은 환경만은 아니다. 밤에 이산화탄소와 수분을 많이 흡수하여 낮에는 입의 기공으로 수분을 내보내야 한다. 물과 햇빛이 많을 땐 그만큼 일을 많이 해야 한다. 반면
올봄에는 또 다른 나의 길을 가겠다. 비록 지난봄처럼 심장은 덜 뛰더라도 그 누구와도 닮지 않은 나만의 봄 길을 가겠다. 올봄에는 맑고 투명한 물길을 보아야지. 활짝 핀 꽃들에 눈을 감고 진실한 마음을 열어가는 소리를 들어야지. 온갖 꽃들은 스스로 피지만 계절이 밀어주고 기운이 있다는 걸 알지니 잘 뜨이지 않은 작은 풀꽃이라도 하늘은 평등하게 나눠준 기쁨이 서려 있다. 봄은 봄으로, 꽃은 꽃으로, 개울은 개울로, 이렇게 물길은 강물에서 만나고 꽃은 마음에서 만난다. 계절마다 피고 지는 꽃씨에서 다시 피는 기다림이 있다.그 기다림은
떡쑥 꽃 옆에서 어머니가 말씀하신다. 시처럼 살지 않아도 좋으니 떡쑥 꽃 삶에서 빚어진 찰진 쑥떡처럼 사라고. 잘나지 못해도 주어진 성품대로 한결같이 지켜주라고. 먼 데에서 귀히 찾지 말고 가까이 있는 사람과 후덕하게 지내라고. 어머니의 무딘 손마디에 피어나는 떡쑥은 한없이 정이 깊다. 쑥새 발끝에서 반짝반짝 별이 된 잎사귀. 그 깊은 곳에 가장 부드러운 마음이 숨어 있다. 아스라이 겨울 햇볕을 먹고 사는 떡쑥은 매서운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겨울나기가 가능한 치자나무와 서향이 있다.치자는 늦여름에 하얀 꽃을 피우고 서향은 이른
해 넘어 나무 등에 타고 올라가는 붉은 얼굴. 산 넘어 붉은 하늘은 느린 마음을 데리고 마을로 내려간다. 어둠은 별빛을 깨우고 별빛은 새벽을 깨우는데 눈이 내린 산길에는 아직도 잠들고 있는 임이 있다. 이미 깨어서 잠들지 못한 그리움도 있다.겨울나무를 한참이나 들려다 보는 이는 가슴이 따뜻한 사람이다. 12월의 산은 적막하기만 하다. 예전에는 땔감용으로 갈퀴나무를 하고 나면 온 산이 우리 집 마당처럼 깨끗하게 쓸려있어 온 산이 사람 냄새가 듬뿍 쌓여 있었다. 그 산길은 핏줄이 이어지듯 두근거렸고 새로운 세계로 가는 듯했다. 지금은
봄을 기다리는 달맞이꽃처럼 여름에 그리운 임을 더욱더 그립게 하는 치자꽃 향기처럼 가을에 지독한 외로움에 토해내는 들국화 향기처럼 이제는 봄여름 가을이 한 몸이 되어 슬픔도 기쁨도 하늘수박 위에 행복한 기다림이 있다.깨끗한 바람에 하얀 얼굴을 씻은 낮달도 하늘수박과 동무 되어 외롭지 않고 석양빛에 그리움에 취한 오늘도 하늘수박과 함께 있어서 감사하다. 꽃은 하늘을 쳐다보고 피지만 열매는 나뭇가지에 기대어 땅을 향하여 주렁주렁 달아놓고 있다.12월 중순쯤에는 모두가 떨어져 홀로 제 갈 길을 가는 풍경이 오히려 자연스럽다. 나뭇잎도 반
솔바람에 떨어진 소나무 낙엽 사이로 살며시 내려앉은 듯 유난히 푸르름을 자아내는 야생화는 노루발풀이다. 이른 봄에 얼레지가 꽃을 피울 때 노루발풀은 연한 봄볕을 기다리고 있다. 얼레지를 보러 갔는데 덤으로 노루발풀을 보면서 봄을 간절히 기다리는 사람에게 찾아온다는 말이 맞은 듯하다.꽃은 6월에 핀다. 노루발풀은 꽃도 예쁘지만 겨울 내내 자기의 색깔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 기특하다. 이 야생화는 노루라는 이미지가 어느 군데도 닮지 않았는데 왜 노루라는 말을 붙었을까. 겨울 산은 황량하다. 그런데 마른 낙엽들 사이에 이 야생화만이 연한
솔바람에 떨어진 소나무 낙엽 사이로 살며시 내려앉은 듯 유난히 푸르름을 자아내는 야생화는 노루발풀이다.이른 봄에 얼레지가 꽃을 피울 때 노루발풀은 연한 봄볕을 기다리고 있다. 얼레지를 보러 갔는데 덤으로 노루발풀을 보면서 봄을 간절히 기다리는 사람에게 찾아온다는 말이 맞은 듯하다. 꽃은 6월에 핀다.노루발풀은 꽃도 예쁘지만 겨울 내내 자기의 색깔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 기특하다. 이 야생화는 노루라는 이미지가 어느 군데도 닮지 않았는데 왜 노루라는 말을 붙었을까.겨울 산은 황량하다. 그런데 마른 낙엽들 사이에 이 야생화만이 연한 초